개정판을 펴내며
네덜란드 글꼴 디자이너 헤라르트 윙어르의 책 『당신이 읽는 동안』(1997, 2006은 지금까지 일곱 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이들의 아낌을 받았다. 저마다 언어가 다르고, 그만큼 쓰고 읽는 방식도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이 책이 지금껏 널리 읽히고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여기 실린 내용이 특정 문화권의 관습을 넘어섬을 시사한다. 윙어르가 평생에 걸쳐 좇았던 ‘읽는다는 행위’의 메커니즘과 ‘글꼴’ 사이의 관계는 비단 글꼴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매일 수많은 글자를 읽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용한 관점을 제공한다.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처음 나온 2010년대 초는 한글 글꼴 및 타이포그래피에 큰 변화가 일던 때였다. 2010년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 『글짜씨』를 창간하며 글꼴에 대한 학술적 터전을 마련했으며, 2011년에는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가 재개되어 글자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이 생성되었다. 같은 해 발표된 안삼열체는 이후 한글 글꼴 디자인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킨 독립 글꼴 디자이너들의 활동을 예견했다. 한편 모니터나 휴대폰 등 디지털 기기에 표시되는 텍스트는 윙어르가 예견한 대로 기술 발전과 함께 인쇄된 텍스트와 점차 그 차이를 좁혀 나갔으며,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져 온 기업과 지자체의 글꼴 개발도 더욱 활발해졌다. 무엇보다도 디자이너들이 그토록 원하던 본문용 한글 글꼴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글꼴에 대한 출판 활동도 눈에 띈다. 2012년에 『타이포그래피 사전』이 출간되었으며, 『당신이 읽는 동안』 한국어판이 나온 지 1년 후인 2014년에는 『한글 디자이너 최정호』가 출간되었다. 한국에서도 드디어 한 명의 글꼴 디자이너를 깊게 다룬 책이 출간된 것이다. 윙어르가 글꼴 디자인에 있어 그토록 전통과 관습에 중심을 두고 작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라틴 알파벳권의 두터운 글꼴 디자인 역사가 있다. “인쇄 활자는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다. 그 전신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1500년 전 로마 시대에 닿는다. (…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