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간하며―김영희
추모사_ 심소 미소는 가섭의 염화미소―한명희
추모사_ 명인 뜨락의 처용랑―최종고
저자 인사말―김천흥
서문―성경린
제1부
그리운 균명학당 시절
무악舞樂의 길로
아악부 연주단 첫 일본 공연
춤과 소리聲樂 사이에서
가곡歌曲과 시조時調를 배우던 시절
첫 아악雅樂 방송과 편종 만들기
이화여전梨花女專의 국악 교육
금강산 여행
제2부
아악부를 떠나다
권번과 요리점으로
광산鑛山 순회공연과 무악계巫樂界의 악사생활
일제 말기의 국악
조선음악협회 활동
광복과 국악원 설립
가설무대의 애환
대한국악원의 발족
제3부
피난지에서의 국립국악원
전쟁 중의 춤 강습
휴전 전후의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 설치
무용연구소 개설
첫 발표회와 대학출강
무용인협회 결성
국악과 설치와 한국가면극연구회
대한민속예술원 발족
제4부
첫 서울시 문화상 수상
재일교포 위문공연과 첫 미국행
하와이 공연
삼천리가무단의 미국 공연
꼭두극 재현
국립국악원의 해외공연
제5부
회갑기념공연 [만파식적萬波息笛]
유럽공연과 대악회 창립
문화사절 해외 나들이
정농악회 창립과 활동
궁중무 재현 발표
무악생활舞樂生活 70년
나의 가족
맺는 말
제6부|무악칠십년 출간 이후 이야기
하와이, 한국 전통공연예술의 또 다른 배양지
자서전 출간과 궁중무용에 대한 연재
정재연구회와 일무보존회 발족
방일영국악상 수상
정농악회 하와이 공연과 탈춤경연대회 심사
국립국악원의 2000년 전후 공연들
무악인생 팔십주년 기념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술채록에 남긴 말
마지막 공연 마지막 무동
참고문헌
심소 김천흥 연보
심소 김천흥 가계도
찾아보기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 인생록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국가무형문화재 김천흥 선생 자서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록(心韶 金千興 先生 舞樂人生錄』은 마지막 무동(舞童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였던 심소 김천흥(1909~2007의 90년 무악(舞樂인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김천흥 선생은 1923년에 창덕궁에서 벌어진 순종황제의 오순(五旬경축연에서 15세의 무동(舞童으로 춤춘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 아악부에서, 광복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최고의 예...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 인생록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국가무형문화재 김천흥 선생 자서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록(心韶 金千興 先生 舞樂人生錄』은 마지막 무동(舞童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였던 심소 김천흥(1909~2007의 90년 무악(舞樂인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김천흥 선생은 1923년에 창덕궁에서 벌어진 순종황제의 오순(五旬경축연에서 15세의 무동(舞童으로 춤춘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 아악부에서, 광복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최고의 예인으로 무악활동을 했다. 더불어 1954년에 자신의 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처용랑], [만파식적] 등의 작품을 창작했고, 1980년대에는 국립국악원에서 궁중무의 복원작업을 이루었다. 또한 전공 악기인 해금을 비롯해 양금, 아쟁의 보존을 위한 연주와 교육, 출판 활동도 왕성하게 수행했다. 무엇보다도 순종황제의 어전에서 춤춘 후 2002년까지 궁중무 [춘앵전(春鶯?]을 춤추므로써 마지막 무동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과정들을 김천흥 선생이 5부로 구분하여 직접 서술한바, 활동의 전후 과정뿐만이 아니라 에피소드, 개인적 소회를 밝히고 있다.
무동으로 춤추었던 순종오순 경축연에 대해 “어둠의 장막이 내려진 주위로 인정전 처마와 붉은 기둥에 달린 전등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밝혀졌고, 전내(殿內에서는 야연(野宴이 베풀어짐과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