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사
프롤로그
1부 독립군 무장기지 봉오동과 최운산 장군
1장 대한민국 독립전쟁의 제1회전: 봉오동 독립전쟁
봉오동 신한촌과 무장독립군 기지 건설 이야기
2장 대한군무도독부
3장 통합군단 대한북로독군부
4장 영원을 꿈꾸던 독립군 기지 봉오동을 떠나다
5장 체포와 투옥, 포기하지 않았던 독립전쟁
2부 최운산 장군 가족 이야기
1장 연변 도태 최우삼
2장 최운산 장군
3장 또 한 명의 독립군 김성녀
4장 내 아버지, 최운산 장군의 큰아들 최봉우
5장 세월을 건너온 최운산 장군의 자녀들
6장 빛나는 형제 최진동, 최운산, 최치흥
7장 최운산 장군의 맏며느리 차연순
8장 최진동 장군의 딸 최경주
3부 봉오동에 가다
1장 역사 속으로 들어가다.
2장 최운산 장군의 마을, 봉오동 첫 방문
3장 봉오동 독립군을 따라 그날을 걷다
4장 봉오동 수남촌 라철룡 촌장
5장 최운산 장군의 손자들
6장 당신은 서간도와 북간도의 차이를 아시나요?
에필로그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한 일본 정규군대와 싸워 이긴 봉오동전투·청산리전투의 승리가 무기도 없는 민병대들이 이뤄낸 눈물겨운 기적이라 생각한다. 우리 역사가 만주 독립운동에 대해 오랫동안 그렇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말 그런 기적이 가능했을까? 동학농민군이 우금치에서 일본군에게 전멸당한 것은 그들에게 기관총과 같은 신형 무기가 있었지만 동학군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전의 핵심은 무기다. 상대에 필적할 무기와 병력도 없이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봉오동전투’는 무기와 무기가 격돌한 현대전이었다. 우리가 일본군에 이겼다는 것은 우리 독립군도 무장력을 제대로 갖춘 군대였다는 뜻이다. 전쟁을 준비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완성할 수 없는 일이다. 군사를 모으고, 매일 정신무장과 체력을 단련하고, 무기를 갖추고, 총포사용 훈련을 반복해야 하는 일이다. 지금도 모든 군대는 언제일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쉬지 않고 실전 훈련을 거듭한다. 그래야 언젠가 벌어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봉오동·청산리전투를 승리로 이끈 우리 독립군도 그랬다. 그들은 급조된 게릴라가 아니라 임시정부를 받아들인 대한민국의 독립군들이었다.
만주 봉오동은 장기간에 걸쳐 독립군을 양성한 본격적인 항일 무장독립군기지였다. 봉오동을 신한촌으로 건설한 간도의 억만장자 최운산 장군은 1912년 조선 사람들을 마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봉오동에 자위부대를 창설했고, 그 100여 명의 사병부대를 모체로 전국에서 모여오는 애국청년들을 정예 무장독립군으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독립군이 점점 늘어나자 1915년 봉오동 산중턱을 개간해 연병장을 만들고, 벌목한 나무로 막사를 짓고, 본부 둘레에 토성을 쌓아 독립군기지 봉오동을 완성한 뒤 본격적인 훈련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1919년 3.1운동이 전 국민을 일깨웠고,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창립되자 최운산 장군은 그동안 봉오동을 지켰던 사병부대 ‘도독부’를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