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관점이 아닌 외계인의 눈으로 보는 세계 혹은 철학
파리 10대학(낭테르대학에서 철학과 미학을 가르치고 있는 페테르 센디는 『주크박스의 철학-히트곡』,『엿듣기: 스파이의 미학』 등 매번 대중문화와 철학을 넘나드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는 철학서를 내기로 유명하다. 그가 다루는 소재들은 철학이 다루는 대상으로는 사소하다 못해 부적절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히트곡이나 스파이 영화 속의 엿듣기 행위가 왜 철학적인지를 설명해내는 그의 글쓰기 방식은 몽테뉴에서 시작한 프랑스 철학 특유의 에세이적 글쓰기를 계승한 것이다. 소재주의에 빠지지 않고, 재치 있는 문체와 깊이 있으면서도 독창적인 논증으로 독자를 설득해내는 그의 공력은 눈여겨볼 만하다. 『외계의 칸트: 우주정치적 철학픽션』도 마찬가지다. ‘칸트’와 ‘외계’, ‘우주정치’, ‘철학픽션’이라는 기묘한 조합으로, 독자들을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끈다.
이 책은 저자가 “어느 화창한 날 칸트를 읽다가 화성인 또는 금성인을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묘사”하고 “심지어 다른 행성에 사는 존재에 대한 일종의 비교 이론 혹은 분류, 말하자면 합리적 외계인론을 제안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대목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자신을 매료하는 이 발견을 넘어, 저자는 이런 궁금함에 이른다. “칸트는 무엇 때문에 우리 지구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를 생각하게 되었을까?”
저자는 사실 철학사에서 외계인을 다루려는 시도들이 꾸준히 존재했으나, 헤겔의 『자연철학』 이후로 중단되었으며 그리하여 서구 철학은 인간 및 지구 중심주의로 귀결되었다고 진단한다. 센디가 보기에 외계인에 대한 상상은 칸트에게 필연적인 것이었다. 칸트의 시대에 근대적 의미의 국민 국가가 형성되고 인류라는 공통 주관으로서의 주체 개념이 정립되면서, 인간과 지구를 보편적이고 총체적으로 사유하기 위한 허구적 외부로서의 외계의 거주자가 요청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카를 슈미트의 ‘노모스’ 개념에서 우주가 요구되는 논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