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모 레비, 빅터 프랭클… 그리고 마침내, ‘자유죽음’의 장 아메리가 증언하는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생존자 장 아메리. 그는 자살을 인간 존엄의 문제로 이야기한 《자유죽음》의 저자이자, 그 자신이 평생토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자유 죽음’을 선택해 생을 마감한 작가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그러나 생과 존엄에 대한 그의 냉혹하리만치 철저한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또 한 권의 책이 바로 이 책, 《죄와 속죄의 저편》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의 고통스러운 체험이 생생히 담긴 《죄와 속죄의 저편》은 《자유죽음》과 더불어 장 아메리 사상의 정수가 새겨진 책이다. 총 다섯 편의 에세이가 담긴 이 책은 고문의 고통, 지식인의 무기력, 고향의 상실, 희생자의 원한과 아우슈비츠를 서서히 망각하려는 독일에 대한 비판 등이 담겼다.
여기에는 《자유죽음》에서도 논의되는 인간 존엄과 자유, 언어화할 수 없는 고통의 문제가 씨앗을 틔우고 있다. 그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와 한나 아렌트 등을 언급하며, 망명에 성공해 “유리로 된 새장”으로 아우슈비츠를 본 그들이 이야기하는 개념어가 거기서 생긴 파국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리라고 비판한다. 장 아메리는 단순히 자신의 기억과 체험을 증언하는 것에서 넘어, 당대 독일의 동시대사에서 그것이 어떻게 기억되거나 혹은 망각되는지를 치열하게 파고든다. 그는 아우슈비츠의 상흔이 아직 독일에 남아 있고, 자신을 비롯한 누군가가 그 상흔을 견디고 있다는 것을 처절하고도 강렬한 문체로 증언한다.
바로 이 점이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빅터 프랭클이나, 《이것이 인간인가》의 프리모 레비 등 다른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의 글에 더해 그의 글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프랭클이나 레비의 수기가 인간성을 박탈당한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의미와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장 아메리의 수기는 인간성을 박탈당함으로 인한 철저한 의미 상실과 불가능성을 직시하고 증언함으로써 그 기억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밑바닥을 낱낱이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