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의 피메일(Female이여, 단결하라!
모든 동물의 역사는 젠더 투쟁의 역사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은 엄연히 다르다. 비인간 동물들 사이에서 자행되는 강제교미와 인간의 강간을 같이 취급하는 것은, 인간의 강간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가려버릴 수 있는 위험이 있다”라는 것이 지금까지 동물행동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던 생각이다. 그러나 역으로, 이러한 ‘구분 짓기’가 동물의 강제교미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함의와 생물학적 시사점에서 눈을 돌리게끔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편견 때문에 오바마 정부 시절, 예일대학교의 ‘오리의 생식기 연구’에 정부 예산을 투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덕페니스게이트(Duckpenisgate’라는 조롱이 쏟아지기도 했다. 오리의 생식기와 성 문화 연구가, 오바마 정부 예산 낭비의 대표주자로 꼽힌 것이다. 하지만 오리의 생식기 연구는 결코 예산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생물 진화에 대한 새로운 시사점으로 가득한 보고다.
어떤 종의 오리는 32센티미터라는 평균적인 암컷의 몸길이를 훌쩍 뛰어넘는, 최장 42센티미터라는 어마무시한 길이의 페니스를 자랑한다. 반면 암컷의 생식기는 구불구불하고, 험난하여 나아가기 어렵다. 이것은 강제교미를 자행하려고 하는 수컷과, 이를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했던 암컷의 치열한 군비경쟁의 결과다. 오리만이 아니다. 침팬지 암컷은 강압적인 우두머리 수컷을 피해, 자신이 고른 수컷과 달콤한 밀월여행을 떠난다. 구애행동을 위해 수컷이 무대를 만드는 바우어새의 경우, ‘비상탈출구’가 마련되지 않은 무대에는 암컷이 얼씬도 하지 않는다. 강압적으로 일어나는 데이트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이토록 놀랍고도 다양하게 성 갈등 양상이 펼쳐지는데, 이들의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동물이 성적 자기결정권과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나름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다! 현존하는 동물들의 신체에는 그 지난한 싸움의 역사가 ‘진화’라는 형태로 아로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