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는 가짜인가?
세 편의 ‘동굴의 우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동굴 속에 사람들이 묶여 있다. 사지가 구속된 죄수들은 동굴 벽만을 바라볼 수 있다. 빈 벽에는 사물의 그림자만이 비치지만, 죄수들은 이것이 실재라고 믿으며 일평생을 살아간다……. 서양철학의 가장 기묘한 이야기, 동굴의 우화다. 플라톤은 동굴의 우화를 통해 ‘내가 보고 있는 게 진짜일까?’라는 불안을 드러낸다.
한편 이런 이야기도 있다. “각각의 동굴 뒤에는 열려 있는 그리고 보다 깊은 다른 동굴이, 각각의 표면 아래에는 보다 넓고 낯설고 풍부한 지하 세계가, 그리고 모든 밑바닥, 모든 정초 아래에는 훨씬 깊은 지하 세계가 존재한다.” 들뢰즈는 동굴 뒤에 더 깊은 동굴이 있다고 말한다. ‘낯설고 풍부한 지하 세계’라는 이미지는 단 하나의 원본을 상정한 플라톤을 부드럽고 강력하게 반박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가 있다. 동굴 같은 방에서, 자야 할 때를 넘긴 늦은 밤에 나는 깨어 있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이 영상에서 저 영상으로 계속해서 넘어간다. 쏟아지는 이미지들에서 눈을 뗄 수 없는 동시에 지긋지긋하다는 감각이 떠나지 않는다……. 이 책 『이미지란 무엇인가』가 그리는 지금의 상황이다. 이미 너무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낸 우리에게 이미지란 무엇인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창구이자 익숙한 쾌락에 우리를 가둬 놓는 이미지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미지는 자유이자, 실재다
가상과 실재의 이분법을 넘어서
현실을 넘는 이미지의 힘을 포착하다
이 책은 서양 형이상학이 견지해 온 이미지 관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이래 데카르트와 흄의 철학은 세계에 대한 경험이 이미지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본다. ‘나’의 의식에 주어지는 표상 즉 이미지를 실재와 분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나에게 주어진 것 너머의 실재가 있다는 환상을 낳거나, 나의 세계로 모든 것을 환원하는 유아론을 예비한다.
현대 철학을 열어젖힌 사르트르와 들뢰즈는 이미지를 해방시킨다.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