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매월대에서 절의를 지키다
방랑길에 나서다·13
김화에서 은거하다·13
절의를 기리는 구은사·16
매월대에서 노닐다·20
철원을 노래하다·22
2 :: 크게 웃고 호연하게 떠나다
문막 동화사에서 하룻밤을·29
원주 감영에 들리다·33
푸른 하늘에 우뚝 솟은 치악산·38
횡성을 유람하다·40
3 :: 외로운 나그네 대취하다
뉘 집에서 대취할 것인가·51
외로운 몸 푸른 산 속을 헤매누나·57
관동대로를 따라 걷는다·67
메밀꽃 필 무렵·74
평창 객사에서·84
매화마을 강가에서·88
나루에 사공 없고 바람만 가득·94
4 :: 산자락 한 자리 차지하다
파리한 몸 진부역을 지나다·101
우뚝 솟은 오대산이 보이네·104
오대산 제일의 명소·108
마음의 달이 아름다운 곳·114
지장보살의 도량·118
달뜨는 모습이 천하제일·122
문수동자를 만났다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127
우통수 맑은 물 옥처럼 흐르네·131
바람 스치니 부처님 말씀인 듯·136
높고 탁 트인 아름다움·141
오대산에 작은 집을 짓다·149
5 :: 술잔 잡고 동해를 바라보다
높이 오르자 시를 지을만하구나·157
세월은 괴롭게도 빨리 흐르네·161
누각에 기대 맑은 하루 보낸다·166
강릉대도호부관아에서·169
다섯 개의 달이 뜨는 경포대·174
모래 곱고 바람 가볍구나·179
동해 푸른 물결 옆 문수당·183
신선이 노닐던 곳에 솔바람 소리만·188
6 :: 푸른 산에서 은거하다
신녀협과 청은대에서 소요하다·199
매월당이 머물던 오세동자터·205
7 :: 세상의 그물 떨쳐버리다
가슴을 열고 북풍을 맞이하노라 ·215
고산의 역사는 흐른다·219
나의 존재를 깨닫게 해주는 곳·225
이 내 몸 가볍게 돌아가네·229
어둑한 소양강에서 친구를 그리워하다·233
신연강을 건너며·237
우두벌에 피어오르는 저녁연기의 아름다움·240
우두사에서 고단한 몸을 눕히다·244
시를 읊
김시습 호탕하게 유람하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이 세상에서 도(道가 실현될 수 없음을 알고 방랑길에 나섰다. 가치가 전도된 이 세상에서 그가 꿈꿔 왔던 왕도정치는 더 이상 실현될 수 없었다. 그의 발길은 철원 복계산 자락의 사곡촌에 닿았다. 사곡촌 골짜기에 세조 정권이 싫어 서울을 떠난 박계손 등이 초막을 짓고 은거하고 있었다. 세조가 예조참판에 임명했으나 이를 거부한 조상치도 이곳으로 왔다. 김시습은 이들과 함께 은거하면서 시대를 거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관서지방과 내금강을 유람한 김시습은 1460년(26세에 강원도로 향했다. 여주를 거쳐 원주 동화사에서 시를 남기고, 치악산을 넘어 횡성 각림사에서 하루를 묵었다. 관동대로를 따라 걷다가 오대산에서 여러 편의 시를 남겼다. 대관령을 넘어 강릉 일대를 유람하고 다시 오대산을 찾아 작은집을 짓고 한동안 머물렀다. 강원도를 유람하고 나니 호남의 산천이 궁금했다. 평창 객사에서 하룻밤 쉬고, 영월 주천을 지나 제천으로 향하였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던 김시습은 49세되던 1483년에 다시 강원도로 향했다. 화천의 곡운구곡에 김시습의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김수증은 김시습이 머물던 곳에 청은대라 이름을 붙였다. 이후 춘천 청평사 세향원에 머물며 청평산 이곳저곳에 자취를 남겼다. 오랫동안 머무른 것으로 보아 가슴속에 맺혀있던 고독과 분노가 어느 정도 치유된 것 같다. ‘씻은 듯이 사라지는 근심 걱정’이라 흥얼거렸다. 청평사뿐만 아니라 춘천의 여기저기에 시를 남기며 세상의 그물에서 벗어나려했다.
설악산 오세암은 오세동자인 김시습이 한동안 머물러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강릉을 거쳐 양양으로 향하던 김시습은 낙진촌에서 봇짐을 내렸다가, 양양 현북면 법수치리 산 속에 터를 잡는다. 양양부사는 안주와 술을보내고 쌀을 보냈고 김시습은 감사의 편지를 보내며 친분을 쌓았다. 여러 해 동안 산에 사는 것을 즐겼지만 늘 즐겁지만은 않았다. 노년의 산 속 생활에 바람과 함께 회한이 찾아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