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를 위해 싸운 변호사
1960년대 미국 시민 자유 연맹은 급여를 받지 못하고 해고당한 여성, 건강 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여성 등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사례를 법정에서 다뤄 달라고 변호사 긴즈버그에게 의뢰했다. 그 취지에 공감한 긴즈버그는 여성과 여자아이들의 권리를 위한 싸움에 나섰고 재판에서 승리했다. 긴즈버그가 연방 대법원에서 변호를 맡은 여섯 건의 재판은 여성의 권리를 수호하고 사회 정의를 실현하려는 것에 그 목적을 둔 것이었다. 긴즈버그는 이중 다섯 건을 승소해 여성들의 권익을 지키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위해 싸우세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당신과 함께 하도록 이끄는 방식으로 하세요.”
차별 철폐에 대한 관심은 재판 이후에도 그녀의 삶에 영향을 끼쳤다. 미국 시민 자유 연맹이 권리 증진 프로젝트를 만드는 일에 힘을 보탰다. 긴즈버그는 모든 형태의 차별에 대항했다. 그녀가 여성과 관련된 사건의 변호를 많이 맡았던 이유는 그 당시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주 대상이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긴즈버그는 남성이 차별받는 사건까지 다루며 성차별이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의 자리에 오르다
1980년 긴즈버그는 컬럼비아 특별구의 연방 항소 법원 판사로 뽑혔다. 재판 연구원, 법학 교수, 변호사로서의 공로를 높이 산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결정이었다. 이 법원의 판사들은 주 차원에서
이미 판결을 받았지만 항소를 한 사건을 다루었다. 미국에서는 논란이 심한 사건인 경우, 주 법원 제도를 넘어 국가 차원에서 판결할 수 있다. 미국 연방 대법원에는 최종 판결을 내릴 아홉 명의 대법관들이 있다.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의 조언을 듣고 긴즈버그를 대법관으로 지명했다. 미래 세대의 법조인들을 위해 문을 열어 준 긴즈버그. 그녀의 삶을 통해 독자는 작은 발자국들이 모여 커다란 진보를 이루어 내는 역사의 한 페이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