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 수 없는 마음으로 노을을 올려다보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났다
우주 비행사 공효는 자아 안정 훈련을 시작한다. 자신의 기억에 따라 구현된 가상의 공간에서 어린 ‘나’를 만나 목적지에 도달하는 훈련이다. 잠에 빠지듯 도착한 곳은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흩날리는데도 지상에서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는, 다소 개연성 없어 보이는 공간. 그곳을 가득 채우는 붉은 노을이 공효의 기억을 깨운다.
노을이 침범해 붉게 변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어린 공효는 참 싫어했다. 아득히 멀어진 기억이지만 그 감정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본문 9~11면
훈련 프로그램 속에서 마주한 어린 ‘나’ 역시 공효의 기억을 상기시킨다. “세게 묶은 양 갈래 머리”, “통통하게 오른 젖살”, “뭉툭하고 넓은 콧방울”(16면과 같은 겉모습이 아니더라도, 기분이 상하면 입을 꾹 다물고 마음을 닫아 버리는 태도가 공효에게 지금 앞에 있는 아이는 다름 아닌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만든다. 공효는 이 아이와 함께 자아 안정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내 목소리를 들은 적 있어?”
울면서 나를 부른 이는 바로 나였음을
공효는 자신을 침범해 오는 아픈 기억들을 지나쳐 목적지인 ‘카라쿠리호’에 닿기만 하면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어린 공효를 달래 가며 걷는 길 위에서 두 사람을 막아선 거대한 거미를 보고 마침내 자신의 상처와 두려움을 모르는 척하면 안 된다는 것을, 때로는 맞서 싸우고 때로는 감싸 안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은 매달리기보다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그런 믿음은 틀렸다. 외면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본문 47~48면
어린 시절 막막했던 두려움을 형상화한 거미의 존재로 알 수 있듯, 공효가 만들어 낸 세계는 자신과 똑바로 마주서야 하는 곳이다. 어린 ‘나’와 훈련을 함께해야 한다는 것은 드넓은 우주에서 홀로 지낼 공효를 가장 외롭게 할 존재가 다른 누구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