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노예무역에 관한 담론을 읽다 보면 미국의 기원을 요약하는 단어로 ‘공포’만한 게 없다는 생각을 한다. 앤 래드클리프에 따르면 공포의 본질적인 의미를 규정하는 속성은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이다. 래드클리프의 말은 동시대 고딕 작가들에 대한 평론에서 나온 것이지만 노예무역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나은 표현은 떠올릴 수 없다.
전통적인 고딕 분위기는 안개 낀 어둠과 영국적 눅눅함이지만 남부 고딕의 그것은 찌는 듯한 습기와 눈을 못 뜰 정도로 강렬한 햇빛이다. 남부 고딕은 외딴 산에 있는 낡은 성의 어두운 복도를 발끝으로 걸어가는 대신 한 손에는 부채를, 다른 손에는 버번위스키 한 잔을 들고 베란다 흔들의자에 앉는다. 고딕 소설에 출몰하는 망령들은 유령, 뱀파이어, 되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인종차별주의, 억눌린 죄책감, 사회적 따돌림, 주류에서 밀려난 결과물인 괴짜들이다.
포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낸터킷의 아서 고든 핌 이야기』에서 흑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캐릭터들은 흉포하고 피에 굶주린 야만인들로 묘사된다. ‘검은 고양이’나 ‘황금 벌레’는 노예 반란에 대한 공포의 은유로 읽혀 왔다. 포는 흰색을 순수함을 암시하는 것으로, 검은색은 기괴함으로 보아 끊임없이 극찬했다. 그리고 그 오만하고 거대한 검은 새 가 있다. 포에게는 H. P. 러브크래프트가 가진 노골적인 외국인 혐오는 없었지만 죄의식과 함께 초래된 유동적인 불안감이 있었고 이는 미국의 호러에 좀 더 적합해 보인다.
경비원들은 회사로부터 징계당할 위험 때문에 행동을 주저했고 경찰은 이 가난한 흑인 여성의 생명을 하찮게 여겨 안일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맥코이를 돕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없었고, 친구가 계속 주장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시체는 몇 주가 지나서야 발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거슬리는 건 맥코이가 119에 전화했을 때 엘리베이터가 작동한다고 언급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이 11층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와서까지 구할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