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_ 100년 동안의 침묵을 넘어서 4
간토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밝히다 | 강덕상
학살당한 조선인의 추모를 위한 한평생 | 니시자키 마사오
영상으로 기록된 피맺힌 증언과 참상 | 오충공
일본을 위해서 조선인 학살의 책임을 묻다 | 야마모토 스미코
간토특별법을 향하여 | 김종수
미래의 평화를 준비하기 위한 싸움 | 가토 나오키
돌아오지 않는 가족을 기다리다 | 간토의 유족
예술과 랩으로 저항하고 기억하다 | 이이야마 유키
학살 현장을 기록하는 순례의 길 | 천승환
부록_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다크투어 안내서
추천의 글_ 간토 조선인 학살, 계속되고 있는 현실
간토대학살은 왜 잊혀졌을까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한 일본 간토 지방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르고 행방 불명자가 4만이 넘었으며, 이재민은 무려 340만 명에 달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인 간토대지진이다.
그런데 이때 간토 지방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조선인들에게는 더 무서운 재앙이 닥쳤다. 조선인들이 지진의 혼란을 틈타 방화, 약탈, 살인,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며, 자경단만이 아니라 경찰과 군대까지 나서서 조선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1923년 당시 학살 피해를 조사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6,661명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이 간토대학살은 식민지 시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이지만, 안타깝게 한국 땅에서는 잊힌 사건이 되었다. 살아 돌아와 이 일을 알린 이들도 적었으며, 그마저도 총독부가 입을 막았다. 해방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 피해자 조사는 요원한 일이었고, 그 후 군부독재 시기에도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며 학살을 직접 경험하거나 들은 이들은 모두 사망했고, 그 결과 간토대학살은 피해자의 정확한 수도 학살당한 이의 이름도 모른 채 유언비어에 의해 빚어진 비극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최근에서야 언론과 방송에서 간토대학살이 조명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100주기인 올해 이전까지 한국 작가가 쓴 간토대학살 관련 대중서는 전무했고, 모두 일본에서 나온 책의 번역서였다. 추모비만 해도 일본에는 20개가 넘게 있는 반면, 한국에는 한 개도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간토대학살은 더 많이 이야기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간토대학살과 관련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은 간토대학살의 전모를 다각도로 보여 주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9명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그들 각자의 삶과 활동은 다양한 결을 갖고 있지만 모두 간토대학살의 아픔을 드러내고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제는 그들의 성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