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제1부 가야는 어떤 나라였을까?
훑어보기
가야는 이름 부자
대표하는 이름이 따로 있었다
가야의 활동 무대는 어디까지?
가야의 시작은 언제부터?
가야의 역사(전기
철의 왕국 가야의 탄생
가야의 화폐는 무엇이었을까?
가야 철소재의 인기 비결은
김수로와 석탈해 대결의 의미는?
언제까지나 걸을 순 없었던 꽃길
농수산물도 풍성했던 철의 나라
중국과 일본의 중계기지 가야
고구려의 낙랑·대방군 함락
위기는 기회로, 기회는 위기로
가락국이 지다
가야의 역사(후기
새롭게 떠오르는 가야
대가야는 어떻게 가락국을 대신했을까?
미니어처 농기구는 어디에 쓰였을까?
대가야의 번성과 쇠락
가라왕 하지의 사신은 어떻게 중국에 갔을까 ?
언제나 넘버투였던 아라가야는 강했다
아라고당회의를 개최하다
가야의 종말
궁금한 이야기
가야 기록이 부실한 이유는 무엇일까?
포상팔국은 어디에?
포상팔국은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과거가 지금에게 건네는 이야기, 순장
순장에도 공식이 있었다
규모가 남다른 대가야의 순장
순장, 그 시작과 끝은
최강 군사력은 어느 가야였을까?
말의 일본 전래와 대가야
말은 화물차다? 장갑차다?
금공품도 전해주고
제2부 가야고분군을 찾아서
경상남도 김해시
구지봉만큼 신성했던 대성동고분군
무덤 위에 무덤을 만들다
봉분은 사라지고 흔적만 남아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도
전국 유일 가야 전문 국립김해박물관
쓰레기장을 품은 봉황동 유적
대성동고분군과 짝을 이루는 왕성 자리
대성동과 어깨를 겨룬 양동리
국제 교류의 중심 김해는 항구 부자
조선 도로보다 튼튼했던 가야 도로
가락국에서 가장 신성한 구지봉
수로왕릉과 허왕후릉의 원래 모습은?
부부인데도 무덤이 떨어져 있는 까닭은?
경상북도 고령군
산성과 왕궁, 그리고 고분군
높이는 그대로인데 지름은 작아지고
공유에서 전유로
신라에서 백제로 다시 신라로
처음엔 아래에 나중엔 위로
무덤에서 웬 음식물이
최초
가야 고분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기념
가야고분군은 가야 연맹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체계를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중앙집권적 고대국가와 함께한 가야 문명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가야 문명이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북아시아 문화권의 여러 국가가 고대국가로 발전하는 단계를 보여주는 유산입니다.
최근 활발한 발굴을 통해 실체가 드러나면서 가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에 머무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야의 600년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할 수 있는 종합 개설서의 필요성을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양한 사실들을 구체적으로 풀어놓는 것까지 더할 수 있다면 좀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개별 지역마다 크고 높은 봉분을 쌓을 수 있었던 배경, 공동체를 지배하고 호령했던 주인공들의 모습, 여러 나라들과 맺었던 관계와 교류가 어떠했는지 등 궁금한 이야기는 참으로 많습니다.
무엇보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문가나 학자가 아니면 읽어내기 어려운 그동안의 가야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닌 역사애호가로서 의무감 6 궁금증 4로 작업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많은 이들이 가야에 좀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