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같이 사는데,
그게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면?
공인중개사이자 풍수 역학 전문가라는 여자가 집에 찾아와서는 이상한 말을 한다. 더 늦기 전에 구렁이를 만나러 고택에 가야 한다고. 여자가 보여 주는 놀라운 장면에 설득된 엄마와 은재, 은규 남매는 그 여자를 따라서 할머니의 고택으로 간다. 외삼촌이 싹 무시해 버린 그 일을 해결하러.
그날 우리 집을 수호하고 있는 신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그때, 엄마와 내가 기절하지 않은 건 아마도 할머니에게 이어받은 담력 덕분이었을 것이다. 어떠한 자극에도 평정을 잃지 않는 용감한 기운 덕분에 우리에게 찾아온 그 이상하고 놀라운 일을 환상이 아닌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 본문 31쪽
한구석이 무너진 낡은 고택에 침낭을 깔고 누운 밤, 처마에서 뭔가 떨어진 것 같은 둔탁한 소리에 이어 마루 위를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소리가 들린다. 그분이 오신 것이다. 거대한 황갈색의 구렁이. 할머니의 집을 오랜 세월 지켜왔다는 가신이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가부장적인 세계관에서 살아왔을 구렁이는 아들은 어디 가고 딸이 왔냐고 묻는 대신, 그 딸이 집안의 실질적인 주인이라는 걸 바로 인정한다. 심지어 마른 명태보다 마카롱을 좋아하는 입맛의 소유자로, 변화하는 세상에 빠르게 적응한 것처럼 보인다.
가신이 지켜 온 것은 집이라는 물리적인 공간뿐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 각각의 안녕이었다. 이제 오래 살았던 집을 떠나며 가신은 아들이든 딸이든, 명태든 마카롱이든, 다음 세대에게 전해 줘야 할 집안의 이야기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잘 있게! 시끄러운 집안이어도 돌보는 재미가 쏠쏠했어.”
쉭쉭 소리를 내며 구렁이가 멀어졌다. 우리 집의 길흉화복은 앞으로도 회전하겠지. 행복하다가도 불행하겠지. 그사이 또 다른 신이 집안으로 복을 끌어와 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자 울렁거리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 본문 64쪽
『거기, 있나요?』를 읽고 나면 우리 집이나 주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