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손님이 무척 많았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나고 남은 그날의 이야기
누군가를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모두를 위한 그림책
새하얀 눈의 망토를 휘감은 겨울 계곡이 잔뜩 몸을 웅크린 채 잠들어 있습니다. 할아버지 댁은 손님으로 가득합니다. 숲속에 들어선 것처럼 너무 큰 어른들 사이에서 소년은 어디에도 끼지 못합니다. 소년은 창밖만 바라보다 문득, 장화와 외투를 꿰고 집을 나섭니다. 할머니와 함께 자주 걸었던 산책길을 혼자 걸어 봅니다. 소년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본 때가 언제인지를 정확히 모르겠어서 속이 상하고 답답합니다. 하지만 익숙한 길 곳곳에서 소환되는 할머니와의 추억이 하나씩 선명해지는 동안 그 따뜻하고 즐거웠던 기억들 덕분에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할머니를 떠올리며 걸어가 봅니다. 그렇게 산책이 끝나갈 즈음, 소년은 자신을 데리러 온 할아버지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은 채 다시 집으로 내려갑니다. 이제는 할머니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조금은 알게 된 듯한 소년의 얼굴 너머로 깊고 품 넓은 자연의 산세가 웅장히 펼쳐집니다. 그날 내내 구름 뒤에 숨어 있던 태양도 어느새 모습을 드러내 소년의 귀갓길을 환히 비춰 줍니다.
독특한 색채로 되살아나는 기억의 반짝임들
크레용과 색연필이 디테일하게 쌓아 올린 그날의 분위기
작가 피에르 엠마뉘엘 리에는 특유의 환상적인 색감과, 과감하면서도 섬세한 표현 기법을 통해 애도의 마음을 그려 냅니다. 가장 어둡고 무거울 법한 그날의 분위기는 가장 높은 채도의 색깔로 간단치 않게 묘사되지요. 역설적인 색상 선택과 더불어 큰 판형을 제대로 활용한 그림의 연출력 또한 눈여겨볼 만합니다. 두 개의 펼침 단위로 극명한 대구와 호응을 보여 주는 구성은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먼저 산책길의 한 대목이 커다란 펼침면을 가득 채우며 밀도 높게 등장합니다. 우리의 시선도 가던 길을 멈추고 그곳에 잠시 머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