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6
창원산단의 여명, 발전 신화의 빛과 그림자 9
대통령 결단 앞서 지역에서 움튼 중공업화 노력 23
마산 바다 건너 주렁주렁 포도 영글던 ‘귀한’ 땅 31
분지 창원, 역사와 삶 쌓이고 흐른 산과 시내 43
나락모티 갈대밭의 여름, 어제처럼 눈에 선한 59
새 역사에 밀려 멀어진 창원 역사의 큰 줄기 69
국가가 원주민 상처에 포개 얹은 ‘산업 대동맥’ 83
문전옥답 헐값에 앗아 만든 첨단산업의 땅 97
포도송이 영글던 곳 붉은 황톳길만 남기고 109
바둑판 구획에 끼워 넣은 원주민의 삶 121
삶터와 생업 잃고 투기 광풍 휘말려 도시 빈민으로 141
실향 아픔에서 끝나지 않았던 이주의 고통 151
하고많은 사연 갈린 길에도 고향 마을 잊지 못하고 159
창원과 원주민 역사 바로 알고 미래 세대 화합하길 169
아픔으로 녹이고 염원으로 깎은 옛 창원의 두 상징 179
듬성듬성 공장 땀 채워 세운 도시에 꿈도 피어나 189
‘닦고 조이고 배우고 익혀’ 창원과 함께 커온 40년 199
성냥갑 아파트에서 나눈 끈끈한 정 207
공장 밖 마산서 낭만과 청춘 보냈던 근대화 기수들 217
문학으로 물은 ‘산단은 무엇인가’ 227
부록 1. 창원국가산업단지 약사 234
부록 2. 원주민 마을 편입 약사 238
부록 3. 원주민 마을 유적비 일람 241
벌써 남겼어야 할 공공의 기억
창원공단 50년 만에 기록하다
창원공단이 설립된 지 내년이면 만 50년이 된다. 창원공단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끌고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는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영세기업에 이르기까지 숱한 기업들이 무대에 올라 저마다 자신이 맡은 배역을 펼쳤다.
국가 시책 차원에서 만들어진 창원공단은 말 그대로 깡촌이었던 원(原 창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계획도시로, 경남에서 으뜸가는 도시로 탈바꿈시키는 지렛대 구실을 했다. 이로써 많은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창원으로 와서 크고작은 기업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공업계 고등학교를 이제 막 졸업한 젊은이들이었다. 창원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청춘을 보내고 새로운 삶을 일구어 새로운 창원을 만들어가는 한편으로 창원 사람이 되어 갔다.
이렇게 창원공단이 우뚝 서고 개별 공장들이 젊은 노동자들로 채워져 갈 때 그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오랜 옛날부터 창원에 터 잡고 살면서 농사를 짓거나 어로 활동을 해오다가 공단 설립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원주민이 바로 그들이다.
그동안 기록되어 온 것은 창원공단의 역사였다. 무슨 기업이 들어섰고 어떤 물건을 만들고 원청과 하청의 관계가 어떠하고 연관산업이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는지, 고용된 인원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수치와 도표 또는 통계로 정리되는 역사였다. 그리고 그것은 창원공단과 더불어 울고 웃었던 이들의 사람 이야기는 배제된 역사였다.
50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다. 공단이 만들어질 때 풋풋한 노동자로 공장에 들어섰던 이들은 대부분 70대에 턱걸이를 하고 있다. 집과 논밭을 내어주고 이주했던 원주민들은 그 노동자들보다 연배가 높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역사로 갈무리할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은 것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창원공단으로 말미암아 뿌리뽑힌 원주민들과 그 덕분에 뿌리내린 노동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찾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