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산의 거룩한 말씀이자 일종의 계시였다.”
SF의 신비로움과 오컬트의 기이함이 만나다
『정원의 계시록』은 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산은 정원이라고 부르는 네트워크를 통해 도시를 보호하고, 상처를 가진 사람을 치유해 주는 독보적인 존재다. 도시의 모두가 믿고 따르는 유일무이의 신. 그 앞에 쌍둥이 자매 사유와 여울이 나타난다.
“조금만 더 참아. 내가 널 깨워 줄게.” (36쪽
혼수상태에 빠진 동생 여울을 구하기 위해 사유는 산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연히 만난 도시인 여래는 그런 사유에게 산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한다. 사유는 주저할 이유가 없다. 그렇게 사유는 점점 산의 실체에 가까워진다.
이야기 속 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미지와 달리, 초월적인 능력을 지닌 숭배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이렇듯 『정원의 계시록』은 기존 SF에서는 볼 수 없던 기이한 분위기 위에 근미래의 첨단 기술을 올려놓는다. 두 장르의 다채로운 재미와 흡입력 강한 이야기 덕에 청소년은 물론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성인 독자도 강렬한 쾌감을 느끼게 한다.
도시를 지배하는 산, 산을 추앙하는 사람들
그리고 산의 실체를 알고 있는 소녀
산과 가까워질수록 사유는 왠지 모를 묘한 기시감을 느낀다. 외지인인 자신에게 들리는 산의 노래, 사고가 나기 전 여울이 꾸었던 꿈, 괴이한 산의 모습까지. 도시의 모든 사람이 받들어 마지않는 산에 사유가 조금씩 의심을 품던 그때, 어디선가 여울이 눈을 뜨게 된다.
“언젠가는 언니도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난 믿어.”
여울이 고개를 휙 돌리자 사유의 고개도 함께 돌아갔다. 그러자 저 하늘에 닿을 것처럼 길게 뻗은 지혜도시의 고요한 도로가 보였다. 그리고 그 도로 위로 커다란 자동차가 여울이를 향해 달려 내려왔다. (105쪽
모두가 숭배하는 존재에 대한 진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선연한 공포인지 느끼며, 사유와 여울 그리고 여래는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다. 가까이할수록 더 숨을 옥죄는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