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떤 세계에서 이렇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가
바이러스가 드러낸 취약성과 불평등성
이 책에 담긴 버틀러의 사유는 코로나 창궐의 충격이 생생하던 2020년에 시작되었다. 팬데믹의 충격은 양가적인 면모를 가지는데, 한편으로는 세계의 불공정성을 드러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상호 연결과 연대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의한 피해는 백신을 개발하고 보급할 여력이 있는 선진국에 비해 개발도상국, 특히 과거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특히 극심했다. 미국에서는 백인 대비 유색인종의 감염 확률이 세배, 사망 확률은 두배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집계되었다. 바이러스 탓에 사람들이 ‘서로 다른 세계에 산다’는 말이 현실화된 듯하지만, 버틀러는 인간이 생명체로서 같은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어야 하는 한 완전히 경계지어진 세계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에 주목한다. 여기에서 버틀러는 자신의 ‘상호의존성’ 개념과 메를로퐁티의 ‘상호 엮임’ 개념을 연결짓는다. 이 행성에 함께 사는 유기체로서 우리는 서로 엮여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관계적이고 상호적인 존재”(69면가 되었으며 서로의 생명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설파하며 팬데믹 문제의 윤리성을 도출한다.
팬데믹 시대의 정치에 윤리를 묻는다
왜 권력은 사람보다 경제를 살리려고 하는가
버틀러는 “그냥 바이러스가 빨리 돌게 하라!”(Let [the virus] rip!고 외쳤던 미국 트럼프 정권의 구호를 언급하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노인·장애인·면역저하자·빈곤층 등 취약계층을 희생하겠다는 권력의 뻔뻔한 결정에 신랄한 비판을 펼친다. 완전한 면역은 불가능함이 명백함에도 정부는 방역조치를 완화하여 시장경제를 섣부르게 ‘재개’했다. 버틀러는 이것이 어느 정도의 인구는 희생 가능하고,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발상에서 나온 폭력적인 조치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생명과 경제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경제우선주의적 정책을 음벰베의 개념을 빌려 ‘죽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