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1950년 6월의 서곡
12장 적절한 간격: 미군 철수, 38도선 일대의 전투, 유격대 진압
봉쇄선 위의 한국 | 제한전과 전면전 | 1949년 38도선 일대의 전투 | 유격대 문제의 최종적 해결 | 결론
13장 “연설”: 프레스 클럽에서 제시한 애치슨 방식의 억제
예측하기 어려운 사태를 포착하고 이해하는 능력 | 애치슨의 극동 구상 | 타이완을 둘러싼 책략 | 프레스 클럽을 향해 | 평양의 문맹文盲 | 방어에 대한 애치슨의 생각 | 애치슨은 공격이 일어날 것을 고려했는가? | 프레스 클럽 이후의 연설: 총력외교와 인도차이나에 대한 관여
14장 전쟁 직전의 북한
1950년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 | 북한에 대한 소련의 군사 지원 | 북한 군사 행동의 징후 | 북한의 동기
15장 전쟁 직전의 남한
“일본 바로 옆”: 한국의 경제적 존재 이유 | 한국과 미국의 군사 관계 | “혼수상태의 위원회” | 5월 30일 총선거 | 혼란―나라를 구하려는 이승만의 노력 | 깊어지는 남한과 중국의 관계 | 홈부르크 모자를 쓰고 참호에 선 덜레스
16장 타이완의 암시
“주타이완 미국 군사고문단”의 문제 | 도너번의 특별 임무 | 굿펠로의 특수 임무: 청천백일기 대신 태극기를 게양하다 | 셔놀트의 특별 임무 | 쿡의 특수 임무 | 침공 | 쿠데타: 총통의 축출을 시도하다 | 결론
17장 6월의 어느 고요한 주말: 전쟁 직전의 도쿄, 모스크바, 워싱턴
의외의 삼각관계: 덜레스, 존슨, 맥아더 | 근접성의 위험 | 전쟁 직전 소련의 정책 | 데레뱐코 사건 | 전쟁 직전의 워싱턴
18장 누가 한국전쟁을 일으켰는가? ― 세 개의 모자이크
옹진의 충돌 사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 개성에서 일어난 폭발 | 동부로 확대된 전투 | 남한과 북한의 일요일 | “북한이 침공했다는 증거 문서” | 그 밖의 증거 문서 | 두 번째 모자이크 | 정보 오류: “기묘하게 조합된 모자이크” | 선호하는 모자이크 | 결론: 결의의 본래 색
전설의 문제작 43년 만에 완역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이 드디어 한국어로 완역 출간되었다. 미국에서 1권이 출간된 1981년으로부터는 43년 만이고, 2권이 나온 1990년으로부터는 34년 만에야 이뤄진 일이다. 한국전쟁이 70주년을 맞고서도 몇 년이나 더 지나서야, 무성한 소문과 이런저런 설의 진원지로 오해되고 일방적으로 규정되어온 커밍스의 주저가 한국 땅에 안착해 독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되었다.
독자들은 의아할 것이다. 다른 것도 아닌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최초로 방대하게 다루고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책이 이제야 완역됐다는 게 믿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그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벌어진다. 해외 한국학 성과들을 국내에 꾸준히 번역 소개해온 김범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누구와의 상의도 없이 단독으로 이 책의 번역에 착수해 순수 번역에만 5년이라는 시간을 바쳐서 완성해냈다. 그 후 그는 출판사에 접촉해 브루스 커밍스와 정식으로 한국어판 계약을 맺은 후 출간이 이뤄질 수 있었다. 브루스 커밍스는 번역 원고를 읽어본 후 보내온 한국어판 서문에서 “고단한 작업을 끝낸 김범 박사가 이제 충분히 쉬기를 바란다. 나는 한국어를 읽을 수 있는 모든 독자에게 그의 번역을 강력히 추천한다”라고 격려했다. 또한 그는 “40년 전 1권이 출판된 책이 이제야 공식적으로 번역된 것”에 대해 “전두환 정권의 금지도서 목록에 올라간 것”과 “한국에서 분단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점을 들어 이해될 만한 일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의 역량과 열의의 부족을 탓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그 내재적 동학과 전쟁으로의 발전과정에 대한 탐구보다는 “범인을 찾는 식”으로 전쟁 발발의 책임 소재를 밝히기에 집착해왔던 점, 미국·소련의 기밀문서와 북한 측 노획 문건들이 공개되면서 대략적으로 큰 그림이 나오자 커밍스 책의 오류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커져버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커밍스는 자신이 미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