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매하고 아슬아슬하게 심의를 통과한 청소년 영화 같은 골목, 명도단
미로 같은 골목으로 유명한 명도단에서 길을 잃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길을 잘 찾아서가 아니라 명도단 사람들이 나를 잘 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문에서
해안 옆 오래된 가게들이 모여 미로 같은 골목을 이룬 명도단은 지역 개발의 명목 아래 오래된 역사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해양 공원이 생기면서 우범지대로 지적받던 몇 블록이 잘려 나가기도 하고 버티던 가게들이 간판을 바꾸고 많은 사람이 떠나기도 했지만, 대흥슈퍼만은 변하지 않고 명도단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처음 방문하는 손님들을 갸웃거리게 하는 커다란 원탁은 슈퍼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명도단 사람들을 위해 할아버지가 마련한 것이다. 그리고 그 원탁 그 귀퉁이에는 오랜 시간 손톱과 샤프로 긁어 만든 ‘연수 꺼’라는 글귀가 선명하다.
나를 낳다가 죽은 엄마,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아빠, 그런 나를 돌봐준 이모와 이모부,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명도단 사람들. 내가 내 탄생 비화로 소란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였다. -본문에서
보육원에서 자란 연수의 엄마는 보호 종료 아동이 되면서 세상에 홀로 서게 되었다. 동생을 데려와 함께 살려고 악착같이 마련한 월세방. 그곳에서 연수의 엄마는 연수를 홀로 낳다 세상을 떠나고, 어린 이모가 연수를 떠맡게 된다. 작은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경찰관이 연수와 이모에게 도움을 주고, 보다 못한 경찰관의 부모님이 갓난아기인 연수를 데려다 키우게 된 것이다. 후에 연수의 이모부와 사돈어른이 된 고마운 분들. 연수는 부모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였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골목의 자연스러운 침묵과 다정한 용인으로 대흥슈퍼의 손녀딸로 자라게 된 연수에게 명도단 골목은 자신의 근원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출생 이야기가 늘 물음표로 남았지만, 명도단의 상징과 같은 원탁에 새긴 ‘연수 꺼’라는 글씨에는 ‘모두의 연수’여서 행복하고 다행스러운 애착 깊은 마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