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판 서문 4
옮긴이의 말-과묵과 태만의 속사정 9
저자서문 22
인용문헌 약어 30
제1장 앎[知]에서 욕망으로 35
1. 난해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37
2. 물음의 반려 43
3. 라캉은 말한다. “욕망하라” 46
4. 욕망의 커뮤니케이션 50
5. 생성적인 읽기 54
제2장 텍스트 스승 타자 59
1. 완전기호 61
2. 스승으로서의 타자 69
3. ‘장어’ 혹은 ‘중간적인 것’ 76
4. 신발을 떨어뜨리는 사람 81
5. 반복과 욕망 88
제3장 이중화된 수수께끼 99
1. 대면 101
2. 저주를 받은 독학자 108
3. 타아와 타자 115
4. 교역과 주체 122
5. ‘괄호 안에 넣기’ 135
6. 거짓과 진실 146
제4장 ‘죽은 자’의 절박 155
1. 사체 157
2. ‘나’는 누구를 가리키는가? 164
3. 양심의 가책 170
4.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180
5. 죽은 자를 죽게 하자 190
6. 지향성 202
7. 절대적으로 외부적인 것 217
8. 에로스적 타자 224
9.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233
10. ‘그’와 ‘대체, 대역’ 243
제5장 죽은 자로서의 타자 249
1. 죽은 후의 나 251
2. 터부와 자책 261
3. 아버지 죽이기 267
4. ‘죄를 범한 나’와 ‘자책하는 나’ 272
단행본 저자후기 281
문고판 저자후기 285
우치다 다쓰루의 고전적인 읽기 방식.
지식의 양이 아닌 배움의 자세가 사유의 질을 결정한다.
이 책은 레비나스의 철학, 그중에서도 타자론과 윤리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우치다 다쓰루는 우리가 통상적으로 ‘레비나스 해설서’에 대해 기대할 수 있는 바와 달리 곧바로 레비나스의 이론을 소개하는 데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레비나스와 라캉이 (일본어 원작의 부제는 ‘라캉에 의한 레비나스’이다 얼마나 난해하게 글을 쓴 학자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만 집중한다. 그리고 그들이 텍스트를 매우 어렵게 쓴 것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음을 서술하고 있다. 요컨대 그것은 ‘그래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라는 질문을 던지게 함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레비나스 독해의 가장 원초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수상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우치다 다쓰루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가 쓴 레비나스론을 읽어도 아마도 여러분에게 “아하 그렇군. 그런 거였어. 이제야 레비나스를 알겠다”라며 무릎을 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식으로 ‘레비나스를 직접 읽지 않고도 안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은 제가 가장 원치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레비나스는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라고 조술하는 것은 이것을 읽은 여러분으로부터 “아, 알 것 같은 느낌이 든다”라는 말을 듣기 위함이 아닙니다. ‘레비나스에 대한 결착을 맺기’ 위함도 아닙니다. 이야기는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는 이것을 읽고 “뭔가 점점 더 모르겠다”라며 머리를 부여잡고는 “자 그렇다면 내가 직접 레비나스를 읽을 수밖에 없겠군” 하고 결심하는 독자를 한 명이라도 늘리고 싶어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치다 다쓰루는 해설서의 의미와는 정반대의 글을 쓰고 있는 것과도 같다. 즉, 통상적으로 해설서에 기대하는 바, 명쾌하게 대상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그 충실한 역할을 저버리겠다는 것이다. 왜 그런 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