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아이 마음 멍들게 하기
글로벌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수많은 가치가 서양 기준으로 바뀌게 됐다. 특히 외모에 대한 가치 기준은 급격히 반전되었다. 둥근 얼굴과 통통한 몸매가 아름답다고 찬양하던 시대가 밀려나고, 갸름하고 작은 얼굴과 길고 날씬한 몸매가 환영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 미의 기준은 바로 이것이라면서, 눈만 뜨면 접하게 되는 각종 미디어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확대 재생산 중이다. 거의 무차별적인 난사다.
『모자 달린 노란 비옷』은 미디어로부터 가스라이팅 당한 부모 때문에 고통받는 아이의 이야기를 담았다. 아빠로부터 얼굴이 크다고 타박받는 채진이의 얼굴은 또래들보다 클 수도 있지만,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엄마로부터 뚱뚱하다고 비난받는 미소도 생각만큼 뚱뚱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디어에 세뇌당한 부모는 아이 스스로 벗기 힘든 굴레를 씌운다. 얼굴이 크다고, 뚱뚱하다고 조롱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채진이 아빠는 ‘얼큰이’가 애정이 담긴 별명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미소 엄마는 지금보다 더 뚱뚱해지면 안 된다는 조언이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의 가슴은 멍이 든다. 그 멍은 감추고 싶은 콤플렉스로 자리 잡게 됐다. 아이들은 콤플렉스를 극복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계속한다. 한여름 무더위에도 모자 달린 노란 비옷과 커다란 점퍼를 벗지 못한다. 그 옷은 이미 피부처럼 아이에게 달라붙었다. 아이는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포기하지 못한다. 이 아이템이야말로 아이가 발견한 최고의 위장복이자 방호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자 달린 노란 비옷』의 주인공 채진이 또한 미디어의 영향권 안에 있다. 채진은 텔레비전을 통해 ‘모자 달린’ 비옷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저것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확신!
하지만 이것은 결과적으로 미디어가 주는 착각이다. 모자 달린 노란 비옷은 얼굴을 가려주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얼굴의 크기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니다. 채진이의 콤플렉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