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프롤로그
1장 일본 항복 이후 : 국공 양당의 각축과 미국의 중재
1 ― 홍문의 잔치
2 ― 근거지 선점
3 ― 미·소의 개입
4 ― 정전협정
2장 결국 내전으로
5 ― 최후통첩
6 ― 중원 쟁탈전
7 ― 푸쭤이, 기염을 토하다
8 ― 협정 파기
3장 공산당의 전략적 후퇴
9 ― 천이와 쑤위, 국군의 진격을 저지하다
10 ― 만주 일진일퇴
11 ― 화동 공방전
12 ― 옌안 방어전
13 ― 마오쩌둥, 섬북을 전전하다
14 ― 들끓는 민심
15 ― 반격의 계기
16 ― 동북민주연군 하계공세
4장 공산당의 반격
17 ― 천겅의 직언
18 ― 중원 돌파
19 ― 마오쩌둥, 고비를 넘기다
20 ― <해방전쟁 2년의 전략 방침>
21 ― 다볘산과 자오둥반도의 싸움
5장 요동치는 저울추
22 ― 동북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다
23 ― 칭펑뎬과 스자좡의 싸움
24 ― 다볘산 토벌과 해방군의 반격
25 ― 공산당, 전략을 정비하다
26 ― 서북의 공세
27 ― 총통 선거
28 ― 쑤위, 재차 간언하다
6장 혼란에 휩싸인 국민정부
29 ― 옌안 철수
30 ― 재정경제 긴급처분령
31 ― ‘산둥의 심장’ 지난
7장 동북에서 승기를 잡다
32 ― 폭풍 전야의 동북
33 ― 랴오선전역 1
34 ― 랴오선전역 2
35 ― 동북 평정
8장 베이핑·중원 결전
36 ― 푸쭤이의 마오쩌둥 생포 계획
37 ― 화이하이전역 1
38 ― 화이하이전역 2
39 ― 화이하이전역 3
40 ― 화이하이전역 4
41 ― 쑹메이링의 미국행
42 ― 핑진전역
43 ― 장제스 하야
9장 창장강을 넘어 남하하다
44 ― 평화회담 재개
45 ― 개국 준비
46 ― 회담 결렬
47 ― 도강전역
48 ― 상하이전투
49 ― 인민해방군 약법 8장
50 ― 대륙 석권
51 ― 신중국 성립 선포
52 ― 진먼다오전역
10장 대륙을 통일하다
53 ― 바이충시와 광시군
미국의 역할과 책임
1949년 1월 21일, 마침내 장제스가 하야를 선언했다. 그날 미 국무장관에 취임한 애치슨은 장제스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사직하기 전에 중국의 외화와 화폐를 모두 타이완으로 가져갔다. 미국의 군사원조 장비도 모두 가지고 갔다.” 반면에 장제스는 이렇게 미국을 비난했다. “미국이 말로는 중국을 중공에 넘겨줄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지원하는 건 쩨쩨하고 온갖 트집만 잡는다. 그들이 원조를 제대로 했으면 우리가 이 모양이 되었겠는가?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책임을 우리에게 미루니 부도덕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1949년 8월 10일 일기에 이렇게 썼다. “마셜과 애치슨은 중국 정책의 잘못과 실패를 가리기 위해 중미 양국의 전통적 우의를 해쳤고, 미국 역사에 커다란 오점을 남겼다.”
국내 최초 본격 내전기
중국에는 내전 관련 기록물이 엄청나게 많을 뿐 아니라 몇 권으로 축약한 실록을 비롯하여 많은 도서가 출판되어 있다. 그에 비해 한국에서는 한국인 저자가 쓴 내전기는 물론, 전쟁 전반을 다룬 번역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 전문가나 역사 전문가가 아니며 전쟁물을 좋아하는 ‘밀리터리 덕후’도 아닌 저자가 방대한 내전기에 도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중국 여행과 중국어, 드라마이다. 중국 여행을 다니며 말을 배우고 드라마를 보며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면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어 할 것 같아” 내전기를 쓰게 되었다. 겨자씨보다 작던 공산당이 어떻게 막강한 국민당을 물리치고 대륙을 통일할 수 있었을까? 중국 곳곳의 내전 관련 기념공원·열사묘역·기념관 등을 방문하고, 중국어를 익힐 목적으로 중국 드라마 [해방]을 보면서 저자의 머릿속에는 이런 의문들이 생겼다.
중일전쟁 때 일본의 점령지에서 공산당은 어떻게 생존하며 세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내전 초기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공산당이 끝내 역전승을 거둔 요인은 무엇일까? 중국 농민들은 왜 공산당을 일방적으로 응원했을까? 학생운동과 지식인, 민주당파는 왜 공산당을 지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