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
가슴속에 동양의 문예 부흥기를 꿈꾸며 준비를 시작한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1997년 즈음 플라톤부터 들뢰즈까지의 서양 철학사를 훑어보고, 《문명의 충돌》의 저자 새뮤얼 P. 헌팅턴의 내한 강연을 듣고 난 후 나의 생각은 이제 동양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확신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한창이던 그때 이 사조의 맹목적이고 반복된 전복과정의 끝은 어디이며 그 대안은 무엇일까 고민하던 중 미래 학자이자 세계적인 석학 헌팅턴의 제안은 그 전복의 끝이, 그리고 해답이 동양에 숨어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후 일관되게 동양의 전통과 고전을 탐구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매순간 현대와 연결해 줄 수 있는 코드를 찾아왔다. 반대로 현대의 시각으로 출발하여 동양의 고전과 연결될 수는 없을까도 고민해왔다.
오래된 전통기법으로 과거의 옛 사람을 그리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이들도 있다. 오히려 그들에게 되묻고 싶다. 우리의 전통 문화예술을 얼마나 알고 옛 사람의 의식을 마음 깊이 공유하고 있는가를...
그리고 내재된 아름다움과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안목이 있는지를... 우리는 전통을 이미 생명이 끝난 과거의 산물로만 치부할 수 있는 과정을 충분히 거쳐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또한 한류 열풍의 원류가 무엇이라고 규명할 수 있는지, 우왕좌왕 하고 있는 우리가 잃어버린 요소는 무엇인지, 이러한 질문에 우리 좌표의 근원이 무엇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시대가 변해도 우리 정신을 관통해야할 고유한 의식과 역사가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부단히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전통을 돌파하는 기괴함으로 격조와 개성을 겸비한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한 사람이 추사秋史이다. 이런저런 오랜 과정이 힘겨울 때 추사는 흔들림 없는 항심으로 얼마만큼 천착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추사가 있기까지 바로 앞 세대인 실학파들의 정신과 자취는 나로 하여금 이들의 아름다운 빛을 그려낼 사명감마저 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