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기독교에 엄청 비판적이었기에 천주교 신자가 된 나를 친구들이 놀리곤 했다. 내가 침 뱉은 우물에 내가 물을 마시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때서야 알았다. 하느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당신의 자녀를 부르시어 예비하고 계시다는 것을. 삶은 내 생각이나 의지대로 살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살아왔던 길을 되돌아보니 내 의도와는 달리 전혀 다른 곳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하고 머리를 숙여야 했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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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에는 수도원들이 교회 안에서 제일 부자란다. 처음에는 버려진 시골 땅이나 깊은 산속에 기도하고 농사지으려 넓은 땅을 사용했는데, 주변이 개발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저절로 땅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하시는 일 참으로 놀라워라. 그들이 부동산 투기한 것도 아니고, 땅값을 올리려 계략을 쓴 것도 아니다. 오직 기도하고 하느님 뜻에 따라 살려고 했을 뿐인데 결과는 부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 p.78
1년에 한 번씩 30년을 주기적으로 단식을 해 왔다. 집에서 혼자 맹물만 마시고 7일에서 15일 까지 했다. 가족들의 음식을 다 챙겨주고 손님 접대, 잔치까지 하면서 회사에 출근했을 때도 했다. 남편이 지독한 여자라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독한 데가 있다. 한 번쯤은 해 보라고 남편과 애들한테 권했지만 한 끼도 거를 수가 없다고 머리를 흔든다.
--- p.124
점심 후에 광교산의 산책은 걸음이 빠른 젊은 수녀님과 나만 남았다. 수녀님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수녀님 시간에 동행하고 있다. 몇 발자국 떨어져 걸으며 침묵한다. 30일간의 피정도 있다. 이 피정은 사제서품을 받기 전에 거치는 피정이다. 일반신자도 받을 수 있는데 10일간의 피정을 받은 신자에게만 허락된다고 한다. 10일 피정과 비슷한 과정이긴 한데 좀 더 구체적으로 하는 심화 과정일 것이다. 사제서품 준비자들은 이 30일간의 피정 중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신부로서 살아갈 확신이 없어 포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