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제1부 | 음식문화
조선시대 음식문화 성립 배경
음식을 만든 사람들
궁중
관청
양반가
중인
밥상차림으로 본 신분사회
계급에 따라 달리한 밥상차림
밥상차림의 왜곡 및 변질
정통적인 조선왕조의 수라상차림
밥상차림의 문화
음양오행사상에서 출발한 밥상차림
음양오행사상에 따른 상차림과 시식, 맛과 색깔
약선과 양념
조선왕조의 궁중음식 변천사
1일 7식을 먹은 조선의 상층부
명나라 사신에게 제공한 소선 조반상
최상층부의 안주와 행주
잘못된 음주문화
점심의 유래
혼례음식문화
처가살이혼에서 시집살이혼으로
임진왜란 이후의 반친영혼
현구고례
제사음식문화
기신제·시제(묘제·다례
불교와의 융합이란 측면에서 바라본 유교의 제사음식문화
음양오행사상으로 본 제사음식문화
외식문화
장시의 발달과 국밥문화
구한말의 술집문화
요릿집 음식으로 전락한 궁중음식
조선시대 여성들의 화전놀이
제2부 | 찬품 각론
조선시대 찬품 개괄
필수식품이었던 쌀·소금·건어물·젓갈·콩·장
명나라 황제에게 보낸 식품 선물 목록
음식의 웃꾸미를 뜻한 말, 교태
원나라 《거가필용》의 영향을 받은 육류 찬품
주식류
백반·팥물밥·유반·골동반·잡곡반
죽
국수
상화와 만두
탕류
전철과 전골
승기아탕 또는 승기악탕
열구자탕·신설로·신선로
면신설로
사라져 버린 시식 - 잡탕과 골동갱
궁중식 용봉탕
관노들의 음식이었던 추어탕
병갱과 떡국
찜류
정조대왕이 잡수신 황구찜
숙종대왕이 잡수신 어묵 - 생선숙편
구이류
설야멱
느르미·느름적·어음적·화양적
병자·빈자·빙자떡·빈대떡
밥반찬이었던 젓갈
회와 조선 사람
생선회를 사서 먹은 민중들
화려했던 어채문화
육회와 갑회
버터를 만든 사람 - 수유치
포와 절육, 하설다식과 황육다식
나물
정조대왕이 잡수신 나물 찬품
잡채와 밀쌈에서 생겨난 지금의 구절판
진채식인 콩나물과 숙주나물
궁중의 청포채에서 유래된 탕평채
초시에서 유래된 고초장
고추가 보급되기
밥상차림에서 보이는 신분과 문화
조선시대에 밥상을 차린 사람들은 누구이며,
그 재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조선 사회에서 신분제도란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큰 기틀이었다. 그런 중요한 규율이니만큼 의식주에 있어 반상의 법도가 아주 엄격했고, 일상생활의 규범에서도 세세하게 정해진 방식이 있었다. 『조선의 밥상』은 궁중, 관청, 양반가, 중인가로 나누어 왕족, 양반, 중인의 밥상을 들여다보고, 그 작은 상 안에 담긴 법도와 문화를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한다.
조선왕조에서는 18세기 말까지만 하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밥·국·반찬 모두를 포함해 왕과 왕족은 7기, 양반은 4기, 중인은 2기를 차려 먹었다. 그렇다면 ‘그 밥상을 차린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궁중에서 왕족들이 직접 밥상을 차리지 않았음은 확실하고, 궂은일은 죄다 솔거노비에게 맡기었을 종가의 귀한 마나님들이 부엌 아궁이에서 불을 때고 있는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거니와, 더 나아가 사무역을 통해 양반을 뛰어넘는 부를 축적하여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던 잘사는 중인 집안의 여인들이 요리하는 모습도 잘 연상되지 않는다.
지체 높은 집안의 안채 부엌에서는 한 달에 거의 한두 번 꼴로 있는 제사에 올릴 음식과 사랑채에 든 바깥손님을 위한 음식 및 일상 음식을 만들었다. 제사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떡 치는 일은 물론 남자종의 몫이었다. 그 외에 솔거노비 중 통지기라는 여자종은 물통이나 밥통을 지거나 찬거리를 사 오는 여자종이었고, 대개 밥을 하거나 장 담그고 반찬을 만드는 여자종을 식모라 불렀으며 반찬 만드는 여자종을 찬모라고도 하였다. 한편 관아와 역의 부엌에서는 주방장 격인 총책임자 칼자, 그 바로 아래 부주방장 격인 국을 끓이는 갱자를 필두로 생선을 잡아 오는 사람, 채소를 기르는 사람, 꿩을 잡아오는 사람들이 소속되어 각자 식재료 공수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 부엌 안에서도 여러 인원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 ‘음식’인 만큼, 『조선의 밥상』에서는 단순히 조선시대 음식의 종류와 음식 문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