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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일본은 고려의 속국이었다 : 정사(正史로만 입증한 고려 제국사
저자 강효백
출판사 말벗
출판일 2023-06-09
정가 18,000원
ISBN 9791188286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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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조 왕건 황제, 함께 새롭게 ‘함여유신’을 선포하다
2. 고려는 황제국 스모킹건 20
3. 호남차별 근거로 날조 악용된 훈요십조의 진실
4. 천안(天安은 황제 국가의 도시 이름
5. 고려는 삼한+발해 4한 통일 제국
6. 고려 시대 만주는 우리 땅
7. 동만주는 고려의 직간접 통치 지역
8. 금(金의 고려에 대한 무한 존경 보은 20선― 근거: 『금사(金史』
9. 일본 등 30여 개국 수장에게 조공받은 고려 제국
10. 일본은 고려 제국의 속국이었다
11. 정약용이 옳았다! 철리국의 위치
12. 강감찬을 ‘강한찬’으로 바로 모셔라
13. 세종의 최대 역점 사업, 한글 창제보다 『고려사』 편찬
14. 일제가 10리를 4㎞로 축소 조작한 까닭
15. 윤관이 산성을 쌓은 공험진은 흑룡강성 학북진
16. 왜곡 조작의 끝판왕, 일본의 왜구와 원구
17. 이성계는 두 번 압록강을 건너 고구려 옛 땅을 수복했다
18. 응답하라! 1023년 고려 제국
19. 新 아방강역고 고려 제국
20. 남녀평등과 휴머니즘의 유토피아 고려제국 ― 형벌제도
책 속에서

『사고전서』 속의 송대의 저명학자 곽약허의 『도화견문지』(1080년 ‘고려국(高麗國’ 편에는 “왜국은 일본국이다. 본래 이름인 왜를 부끄러워했는데, 동쪽 끝에서 스스로 일본이라 부른다. 지금 고려에 신하로서 속하고 있다(倭國乃日本國也, 本名倭, 其名, 又自以在極東, 因號日本也. 今則臣屬高麗也”로 기록해 일본을 고려의 속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고려를 대국으로, 고려 군주를 황제로 모셨다. 고려 제국의 군주들은 황제의 전용어인 조서, 성지, 칙령을 사용했다.

‘조서(詔書’는 황제의 명의로 작성되는 공문서이다. 조서를 넷으로 세분하면 황제가 중앙정부에 하달하는 명령을 ‘조(詔’, 일반 백성에게 하달하는 명령을 ‘칙(勅’, 법제를 고치거나 상벌을 내리는 ‘제(制’ 황제가 제후를 봉하는 명령을 ‘책(策’이라 하였다. 이런 황제의 명령들은 통틀어서 ‘성지(聖旨’ 또는 ‘칙령(勅命’이라고 했다. 『사고전서』 속의 송대의 저명학자 곽약허의 『도화견문지(1080년

조서는 황제국에서만 사용되었으며, 제후국에선 교서(敎書와 어명(御命으로 불렸다. 황제국 고려(918~1274년는 당연히 황제의 명령, 조서(조· 칙· 제· 책 포함와 성지를 사용하였다. 원 나라 간섭기 이후와 조선 시대에는 조서를 쓰지 못하고 교서라고 했다. 조서의 명칭을 회복한 건 고종황제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1897년 10월 12일 이후의 일이다.
· 태조가 조서(詔書를 내리고 신하들이 사례하다.
─ 『고려사』 세가 제1권 918년(태조 원년 918년 6월 16일(음
· 고종이 조서를 내려 말하기를, “농사가 바야흐로 바쁜 시기에 큰 가뭄이 들어서 해를 끼치고 있는데, 이는 진실로 형정이 잘못된 탓이므로 짐은 매우 두려워하노라.”라고 하였다.
─ 『고려사』 세가 제23 1242년(고종 29년 9월 2일(음
16세기 초까지 일본은 고려와 조선 군주에게 황제에게 올리는 표문을 바쳤다.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공문을 ‘표문(表文’이라 하고 제후나 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