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들어가며: 한국전쟁의 타자
제1장 의도된 망각
1. 백악관에 울려퍼진 항미원조의 선율
2. 냉전이 억누른 냉전 기억
3. 기억의 관리와 기념의 굴곡
제2장 기억의 해빙
1. 두편의 금지작과 한편의 상영작: 「항미원조」 「북위38도선」 그리고 「38선의 여병」
2. 펑 더화이의 문제적 복권: 「펑대장군」 「삼선의 펑더화이」 「펑더화이원수 」
3. 포스트혁명 전쟁서사와 원작의 귀환 137: 「단원」 「영웅아녀」 「나의 전쟁 」
제3장 ‘승리한 전쟁’의 안과 밖
1. 귀환한 항미원조 서사의 이념적 빈곤
2. 결사항전의 기억과 부유하는 사연들: 「압록강을 건너」
- 「 압록강을 건너」 시놉시스
3. 스포트라이트가 밝힌 것과 덮은 것: 「장진호」 「장진호의 수문교」
제4장 소인물(小人物의 역사: 「금강천」
부록
1. 웨이 웨이 「누가 가장 사랑스런 이인가 」
2. 중국인민지원군 참전부대 서례표
참고문헌
항미원조 서사의 부침과 뒤늦은 귀환
제1장 ‘의도된 망각’에서는 먼저 근래 10여년 사이에 급변한 중국 내 여론을 짚는다. 2020년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소감에 중국 네티즌이 강력한 반감을 보인 사건은 그 몇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1960년대 본격화된 중국과 소련의 갈등으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화해와 수교는 상호 경제성장으로 이어지는 경제적 밀월관계로 발전했다. 2000년을 전후한 기간에 양국의 밀월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시기 중국 공산당은 미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만한 행동에 매우 신중했고 항미원조전쟁 기념 규모와 공적 언급은 점차 축소되었다. 그러나 미국 오바마정부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을 겨냥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BTS의 밴플리트상 수상 당시에도 수상소감이 주로 논란이 되었지만, 그 상의 이름인 ‘밴 플리트’가 한국전쟁 시기 미중이 맞붙은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인 상감령 전투의 미군 측 사령관이었다는 점은 한국 내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사이 미중 대결 의식과 중국 내 애국주의가 그만큼 강화되었고 그 맥락에 한국전쟁이 있는 것이다.
제2장 ‘기억의 해빙’에서는 ‘미중 대결’ 이전 항미원조 서사의 궤적을 말한다. 2000년을 전후로 항미원조 영화와 드라마가 각각 한편씩 상영 취소되었다. 영화 「북위38도선」과 드라마 「항미원조」는 출병 50주년을 맞아 큰 기대와 치밀한 준비를 거쳐 제작·상영될 예정이었지만 미중관계의 예민한 파고를 넘지 못하고 방영이 좌절되었다. 그러나 당시 미중관계가 최고의 밀월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항미원조 서사가 그만큼 주목받았다는 사실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50주년이라는 특별한 의미도 있었겠지만, 이 시기 민간에서 고조되었던 반미 정서도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당시 중국 당국이 미국을 대할 때 지나치게 저자세를 취한다는 불만이 민간 사이에 있었고, 미국과 싸워 ‘승리한 전쟁’으로 공식화되어 있는 항미원조전쟁 서사가 대중의 눈길을 끌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