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보는 호퍼의 생애
이 책은 그래픽 노블로서 그동안 출간된 호퍼 관련 도서와 몇 가지 다른 점을 보여준다. 먼저 형식의 측면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영화적 접근 방식으로, 텍스트보다 인상적인 이미지가 스토리의 흐름을 주도한다. 저자는 호퍼의 마지막 작품「두 코미디언」에서 영감을 얻어, 호퍼와 그의 아내가 대화를 나누며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서막을 연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부분이 클로즈업된 첫 장면은 호퍼가 아내를 인생의 파트너로 인정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당연한 듯 보이는 이 장면에서 독자들이 호퍼 부부의 알려지지 않은 삶을 짐작하긴 어려울 것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아내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은, 그동안의 우여곡절을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호퍼 자신이 말했듯이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그리는 건 어렵기’ 때문에, 한 인간의 모습도 보는 시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위대한 화가 호퍼의 인간적인 면모를 그의 아내, 조세핀의 관점에서 예리한 앵글로 포착하는 저자의 시점은 신선하게 느껴진다.
침묵의 화가를 생각하며
내용의 측면을 살펴보자. 만화의 역사에 정통한 작가 세르지오 로씨는 호퍼의 생애를 네 개의 장으로 요약한다. 기승전결의 구성을 이루는 각 챕터는 호퍼가 겪은 생의 터닝포인트와 그에 따른 시대적 배경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전체 스토리는 무대 위에 대칭적으로 등장하는 두 인물에 의해 전개된다. 호퍼와 아내 조세핀이 그 주인공으로, 그동안 남편의 압도적인 존재감에 가려져 있던 아내 역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야기의 한 축을 맡은 조세핀은 호퍼가 평생을 바쳐 구축한 예술혼을 일상적인 말투로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간결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대화가 핑퐁 게임처럼 펼쳐진다. 호퍼가 당대 미술계의 주류에서 벗어나 자신의 영역을 어떻게 구축했는지,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미술’은 왜 존재하지 않는지 등등 묵직한 주제도 등장한다. 한 사람의 생을, 그것도 호퍼처럼 촘촘한 생애를 한 권의 그래픽 노블로 담아내는 건 쉽지 않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