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근현대 국어 만들기의 역사를 되짚어보다
I. 일제 말 조선인의 삶과 조선어 그리고 조선어학회
_일제의 조선어 정책과 조선어 학계의 대응
1. 조선인 ‘광김민수光金敏洙’의 학교생활
2. ‘마포국민학교’ 조선인 교원의 수업과 조선인의 언어생활
3. 강원도 홍천의 청년 김윤수와 조선어학회
4. 한 청년의 삶을 바꾼 조선어학회와의 만남
5. 일제강점기 조선어학회의 위상
II. 해방 그리고 ‘국어’가 된 조선어
_해방 직후 국어 회복 운동의 방향성과 갈등 양상
1. 해방 직후의 국어 회복 활동
1-1. 조선어학회의 재건 활동
1-2. 조선어학회의 국어 강습 활동
1-3. 국어 규범 정립 활동
2. 조선어학회 중심의 국어 정책과 갈등 양상
2-1. 해방 직후 국어 정책의 방향
2-2. 한글 전용 정책
2-3. 국어 정화 운동
3. 조선어학회 활동의 역사적 위상과 공헌
4. 분단과 조선어학회의 내적 갈등
III.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어 정책과 국어학의 새 출발
_국어 정책의 체계화와 국어학계의 재편
1. 정부 수립 이후의 국어 정책
1-1. 대한민국 정부 수립의 의미
1-2. 정부 수립 직후 국어 정책 양상
2. 대학의 설립과 국어국문학과의 개설 과정
2-1. 일제의 대학 제도와 조선어문학 전공자의 육성
2-2. 국어국문학 1세대의 활동과 신세대의 출현
2-3. 제2세대의 국어국문학 전공 이수 과정―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상황
3. 신세대가 주도하는 국어국문학 연구회
3-1. 초기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생 및 졸업생의 활동
3-2. 서울 각 대학 조선어문학연구회의 조직과 활동
IV. 한국전쟁기, 국어학의 모색
_혼란의 수습과 학풍의 혁신
1. 전쟁의 폐허 속 대학의 정비
1-1. 대학의 혼란과 국어학자의 선택
1-2. 부산 피란 시절의 대학과 국어학
2. 학풍의 혁신과 국어국문학회의 출범
2-1. 국어국문학회의 창립과 학회지 발간 과정
2-2.
국어학자 김민수와의 두 번의 대화, 책으로 엮다
먼저 국어학자 김민수가 누구인지부터 살펴보자. 2018년 2월 15일, 평창 동계올림픽에 관심이 집중되던 때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민수에 대해 저자 중 한 명인 최경봉(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은 〈우리가 한 국어학자의 삶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는 글을 썼다. 이 글에는 ‘김민수가 누구인가’, ‘왜 김민수의 구술을 살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담겨 있다. 그 중 일부를 보자. “1926년에 출생한 선생은 엄혹했던 일제강점기에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을 구독하던 친형 김윤수의 영향을 받으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공과대 진학을 꿈꾸었던 19세 청년은 1945년 해방 직후 열린 조선어학회 간사장 이극로의 강연에 감명을 받고 우리말 연구에 일생을 걸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1945년 조선어학회 국어강습원 파견 강사 선발 시험에 응해 합격한 후 한글 보급 운동에 참여하였다.”(346쪽, 《오마이뉴스》 2018년 2월 23일
저자들은 2007년 해방 이후 국어 정립을 위한 학술적?정책적 활동 양상과 관련한 김민수의 증언을 들었다. 김민수와의 첫 번째 대화였다. 두 번째 대화는 고인이 된 김민수와의 ‘대화’였다. 김민수의 증언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상황에서, 고인이 남긴 증언의 의미를 설명하기도 하고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증언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 책은 이렇게 이루어진 두 번째 대화의 결실이다.
생생한 증언, 선연한 진술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구술자 김민수의 생생한 증언이다. 열여덟 살 소년이었던 김민수가 일제에 강제로 징병되어 ‘개죽음’당하기 싫어서 교사 검정 시험을 준비했다는 진술(25쪽, 교사 검정 시험에 합격한 후 총독부의 발령을 받아 취업해야 징용이나 징병을 유예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마포국민학교에 발령을 받고는 “야,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안도했다는 증언(34~5쪽에는 일제강점기의 엄혹한 상황이 오롯하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정책이라는 게 애초부터 완전동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