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제1장
등산포 일기
추억의 그림자
골배마실에서 만나다
하느님은 누군가
금지된 하늘
성 이그나시오의 순교
샤스땅의 편지
마카오의 신학교
커다란 종이호랑이
국경에서 만난 밀사
어서, 일어나 걸어라
만주 횡단
제2장
뱃길을 열어라
나침반과 항해지도
요나의 돛배
땅에서 맺힌 것은 땅에서 풀어라
내가 너를 선택했다
라파엘 호의 표류
숨어있는 마을
서로의 천사가 되다
주여 당신이름
나무 조각에 붙은 영혼
붉은 포승줄
세계지도를 바치다
김대건 구명 탄원서
사랑하는 형제여
김대건 해설
김대건 신부 연보
김대건을 전후한 한국사 연표
참고문헌
책 속에서
마카오에 있는 그림이 그려진 봉투 석 장, 여덟 쪽 병풍 그림이며 구리로 만든 요강 세 개, 조선에서 순교한 서양 신부님들의 유품이 든 누런 주머니, 이머 스승 리바 신부에게 보내는 조선의 한지 스무 장, 조선 그리빗 세 개, 붓 네 개가 든 꾸러미도 들어있었다.
김대건 신부가 항해 도중 세필로 그린 조선지도는 훗날 1855년 파리 왕립도서관에 입수되어, 프랑스의 「지리학회지」에 발표되었다. 프랑스 생 마르탱 의 「세계지리사전」에는 〈김대건의 조선전도〉 원본이 수록되어 있고, 그 지도는 현재는 파리국립도서관 지도부에 소장된 품목이다. 김 신부는 중국 선장들과 얘기가 잘 되어 만주에서 조선 입국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매스트르 신부와 최양업 부제를 모셔 올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을 기대했다. 그들은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서 등산포로 다시 귀항했다.
--- pp.18~19
그 해 1836년 봄, 모방 신부는 교우들이 숨어 사는 산골 골배마실 골배마실: 지금의 경기도 용인특례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서 소년 김재복을 처음 만났다. 김대건 신부의 어린 시절 이름은 김재복이었지만 훗날 조부가 그에게 큰 뜻을 세우라는 뜻으로 이름을 김대건으로 바꾸어주었다. 당시 은이 마을의 공소에서 미사 첨례를 하던 김대건 신부의 아버지 김제준 이그나시오는 모방 신부로부터 해외에 유학시킬 신학생을 찾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때 마침 아들을 신학교에 보내고 싶었던 그는 아들을 모방 신부에게 데려갔다. “바로 이 애가 제 아들 김재복입니다.”
모방 신부는 소년 김재복이 착하고 성실한 데다가 순교자의 핏줄을 이어받은 자손이라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시 15살이었던 김재복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신학교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어서 남몰래 마음속으로 그 꿈을 키우고 있었다. 그는 모방 신부를 만나자 가슴이 뛰었다. 골배마실에서 조부로부터 한문을 배우고 있던 산골 소년 김재복에게 모방 신부는 하늘이 보내준 전령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