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 _김양진
역주편01 胎敎新記 單
I. 〈胎敎新記 序〉 - 申綽
Ⅱ. 〈胎敎新記音義序略〉 - 鄭寅普
Ⅲ. 〈胎敎新記章句大全〉 - 李師朱堂 著/柳僖 註
1. 第一章 ‘敎[교] ’자에 대해 말함
2. 第二章 ‘胎[태] ’자에 대해 말함
3. 第三章 ‘태’와 ‘교’를 갖추어 말함
4. 第四章 태교의 방법
5. 第五章 태교에 대한 잡론
6. 第六章 태교를 행하지 않는 손해에 대해 말함
7. 第七章 사람들이 귀신에게 아첨하고 꺼리는 일에 구애받는 것을 경계함으로써 태에 이익이 있게 함
8. 第八章 잡다하게 인용해서 태교의 이치를 증명하고 제2장의 뜻을 거듭 밝힘
9. 第九章 실제의 좋은 글 한 편을 들어 옛 사람이 이미 행한 일을 인용함
10. 第十章 태교의 근본을 미루어 말함
Ⅳ. 〈附錄〉
1. 墓誌銘 序 - 申綽
2. 跋1-儆(柳僖
3. 跋2-長女
4. 跋3-小女
5. 跋4-權相圭
6. 跋5-李忠鎬
7. 跋6-權斗植
8. 跋7-玄孫 近永(柳近永
Ⅴ. 〈胎敎新記章句諺解〉 - 柳僖
1. 제일장
2. 제이장
3. 제삼장
4. 제사장
5. 제오장
6. 제육장
7. 제칠장
8. 제팔장
9. 제구장
10. 제십장
역주편02 〈태교신긔언해〉 - 희현당(李師朱堂
Ⅰ. 잡셜부 胎敎新記 單
1. 제일장
2. 제이장
3. 제삼장
4. 제사장
5. 제오장
6. 제육장
7. 제칠장
8. 제팔장
9. 제구장
10. 제십장
Ⅱ. 부셜
1. 〈태극리긔셩졍귀신인심도심디결〉
2. 〈긔삼주셜〉
3. 〈역셜〉
4. 〈결사〉
부록1: 〈논문〉: 18세기의 태교인문학과 『태교신기(胎敎新記』 / 김양진
부록2: 『태교신기』 원문과 주석 원문 인용서목의 서지 및 인용 내용
부록3: 주요 인물 사전
원문1: 태교신기 단(1801/1938
원문2: (존경각본 태교신기언해(1801/1938
원문3: (유기선 소장본 태교신기언해(1810
조선 최고 여성 유학자 사주당이씨가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태교서!
어머니가 짓고, 아들이 언해하고, 딸들이 발문을 쓰고, 유학자들이 서, 발을 쓰다!!
종합형 단행본이자, 태교의 문화사! 21세기 4차 산업시대, 인간의 가치를 다시 생각케 하다!!
1. 이사주당과 태교신기, 유희
이사주당은 1739년(영조 15에 이창식의 2남 5녀 중 넷째 딸로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부모, 조상이 벼슬하지 못한 가문 출신으로, 늦은 나이인 25세 때(1763년, 癸未 진주인(晉州人 유한규(柳漢奎, 1718~1783에게 시집을 갔다. 10년 뒤인 1773년(35세에야 아들 희(僖, 초명은 儆를 낳았는데, 이후로 세 딸을 더 두었다. 〈胎敎新記(태교신기〉는 사주당 이씨가 유희를 낳기 전인 1772년경에 지었는데, 여기에 남편인 유한규가 ‘교자집요’라는 이름을 붙여 두었다.
그 후 20년 동안 이 책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우연히 셋째 딸의 상자 속에서 이 책이 발견되어, 62세인 1800년에 〈胎敎新記(태교신기〉라는 이름으로 책을 완성하였다. 그의 아들 유희가 여기에 주석과 음의, 언해를 더하여 자신의 스물여덟 번째 생일인 1801년 3월에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胎敎新記諺解〉. 그로부터 9년 뒤인 1810년(사주당 72세에 큰딸과 작은딸의 발문과 함께 〈부설(附說〉 등 후기와 언해를 덧붙여 하루 만에 묶어서 만든 것이 유희의 후손 가에서 오래도록 세전되어 왔다.
이사주당은 이후 80세가 넘으면서 고질병으로 3년 남짓 고생하다 1821년 9월 22일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태교신기의 ‘실질적인 주인공’(태교로 태어난이라고 할 이사주당의 아들 유희는 20대 중반에 당대의 저명한 학자였던 정동유(1744~1808에게서 사사를 받았다. 그는 사주당의 ‘시험’에 통과하여 유희의 스승이 되었다. 사주당보다 다섯 살 아래인 정동유는 특히 양명학(陽明學과 상수학(相數學에 밝았고, 훈민정음학이라 할 수 있는 당대의 언어학에도 밝았다. 이사주당의 태교와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