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5
1부
괜찮아·12
나는 왜 노박덩굴을 사랑하는가·14
그 계절의 풍경 속에서·16
손을 모아봐·17
목련의 겨울눈·18
고흐의 아주 사소한 독백 하나·20
겨울, 미루나무 아래에 서면·22
찬 물가의 나무처럼·24
생존의 무늬·25
섬진강·26
숯·27
새벽 세 시의 망상·28
어떤 독백·30
일생의 기다림은 가슴에 새기는 거야·3
2부
너의 편지와 이른 저녁의 눈·36
몸이 계절이다·38
백자달항아리꽃·39
저녁이 내릴 무렵·40
창밖의 초록 이파리·41
다리 위에서의 몽상 1·42
다리 위에서의 몽상 2·43
다리 위에서의 몽상 3·44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45
그 봄날을 잊지 말아요·46
가을 하늘·47
무아의 경지에 이른 새·48
홀로 핀 꽃·50
너무 오래 그리운 강가에 앉아·51
누가 너더러 시 쓰래?·52
잎·54
3부
폭설의 하루·56
폭설 전야·57
빛이 그리울 때·58
정서(情緖·60
오월에 떠난 벗·63
고양이의 무덤·66
외로운 집·68
안경을 쓰고 싶은 아침·70
처연한 것은 팔짱을 끼게 하고·71
봄비 내리는 소리·72
임하도 화가 조병연·74
미인은 자기를 놓아버리고 싶을 거야·76
김광석의 옆얼굴·77
능주역·78
4부
그 다리를 건널 때·84
좀 살펴봐·86
그물·87
티 없는 하늘은 설움을 준다·88
잠시 비 그친 들녘·90
나를 벗고 싶어질 때·92
업보·94
밀걸레·96
손수레·97
눈칫밥·98
새들의 안부를 묻고 싶어질 때가 있다·100
검버섯·102
눈 위의 새 발자국·103
굽은 나무·104
붉은 꽃잎을 보며·105
등·106
그 여자·108
손님도 시처럼 맞이하나 봐요?·110
배후·111
지난 계절은·112
해설
‘속울음’의 깊이가 미치는 감응력(고명철·113
‘몸’의 서정, 그러나…
가슴이 먼저 울어버린다는 것은, 모두 시(詩다!
시인이 사물과 함께 ‘울음’에 동참함으로써 드디어 시가 꽃핀다.
박노식 시인이 이렇게 사물의 ‘울음’에 감응하는 것은 어쩌면 시인 자신의 가슴에 이미 울음이 당도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표제작에서부터 그것이 드러난다.
눈 그친 후의 햇살은 마른 나뭇가지를 분질러 놓는다
때로 눈부심은 상처를 남기고
산새는 그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거나 종종거리지만
시린 몸이 노래가 될 때까지 겨울나무는 견딘다
하지만 그가 눈물을 보이지 않는 것은 가슴이 먼저 울어버리기 때문이다
_「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전문
박노식 시인은, 햇살에 가지가 부러진 겨울나무가 “노래가 될 때까지” 견디는 것은 나무의 “가슴이 먼저 울어버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삶에는 상처가 도처에 그리고 아무 때나 있다. 위 시에서도 비바람이나 폭설이 상처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눈부심”이 상처를 남긴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눈부심”은 광학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그전에 내린 ‘눈’까지 포함하는 생(生의 서사를 가리킨다. 박노식 시인에게 생은 결국 “눈부심”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환희’이거나 달관이 이루어낸 무갈등의 세계가 아니다. 도리어 “시린 몸”이면서 그것을 초월하려는 몸짓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울음”은 그 몸짓의 다른 이름이고, 시인이 가 닿고 싶은 초월의 자리는 “노래”이며 어떤 시편들에서는 “꽃”으로 표현된다.
「가슴이 먼저 울어버릴 때」 다음에 실린 작품인 「그 봄날을 잊지 말아요」에서도 ‘울음’을 말하고 있거니와, 「그 봄날을 잊지 말아요」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그 봄날에 울어본 이는 설움의 극치를 아는 사람
어찌하여 잠 못 드는 밤에 별들마저 숨어버리는지
새들은 소리를 잃고 바다는 파도를 잃었네
땅은 검고 하늘은 부옇고 나무들은 메말라서 암흑뿐,
너의 다섯 발가락과 너의 다섯 손가락이 지워졌네
초침이 떨어져 시계는 온전치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