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자신을 수치스러워하지 말라!”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수치심을 가져야 할 건 당신들이다!”
시대적 명령 사이에 자리한 감정, 수치심
수치심은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진다. ‘부끄러움’의 유의어로는 자괴감, 창피, 치욕, 모욕, 망신 등을 들 수 있다. 모두 극복해야 할 감정, 또는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에 속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느낀 ‘부끄러움’부터,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명예 살인’, 그리고 현대의 포털 사이트 뉴스란에 가득한 ‘성적 수치심’까지, 수치심은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수치심은 마땅히 가져야 할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수치심을 모르는 자들 같으니”, “염치가 있어야지”,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같은 용례에서처럼.
이런 용례에서 수치심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을 함축한다. 수치심을 아는 이들, 염치가 있는 이들, 마땅한 창피를 느끼는 이들이 많은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판단 말이다.
그런 점에서 프레데리크 그로는 “수치심은 혁명적 감정”이라고 말한다. 수치심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해소해야 할 심리적인 현상만도,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 쓰이는 법적 근거만도 아니다.
수치심은 고대 그리스어로는 아이도스aidos, 라틴어로는 푸도르pudor라 불렸다. 이는 정치적 복종의 지렛대이자 사회적 슬로건이며, 내면을 형성하는 원리를 담은 찾던 고대 사회의 윤리를 함축한다.
수치심은 우리에게 불복종할 힘을 주는 혁명적 감정이다
책의 제목은 마르크스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당신은 웃으며 나를 보고 말하겠지요! 시시합니다! 우리가 혁명을 하는 건 결코 수치심 때문이 아니라고 말이지요.
난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수치심은 이미 하나의 혁명입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1813년에 승리한 독일 애국주의에 대한 프랑스 혁명의 승리입니다. 수치심은 일종의 분노입니다. 억눌린 분노. 온 나라가 정말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건 달려들기 위해 움츠린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