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이 요시유키의 생애
저자 사쿠라이 요시유키는 1904년에 태어났으며 주오대학(中央大?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28년 경성제국대학 조수(助手로 근무하게 되었고, 법문학부의 시카타 히로시(四方博를 도와 ‘조선경제연구소’의 업무를 담당했다. 주로 조선 관련 자료의 수집과 정리에 진력했다고 하는데, 이 책에 소개된 서적들은 대부분 당시 연구소에서 서지 사항을 연구하면서 얻은 정보들에 기반하고 있다. 자료의 양과 질 어느 면으로 보아도 당시 조선경제연구소가 자료 수집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사쿠라이는 경성제국대학에서 조선총독부의 보물고적명승기념물보존회, 조선박물관, 이왕가미술관 등에 관여했던 오쿠히라 다케히코(?平武彦, 그리고 유진오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특히 자기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 유진오를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또한 사쿠라이는 1937년 5월에 발족한 ‘경성서물동호회’의 간사를 맡아서 패전으로 중단될 때까지 참가했다. 그리고 소위 재야의 ‘조선전문가’들 사이에서 서지학적 연구의 본격적인 연습을 경험했다. 서물동호회의 참가 멤버는 아유가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 이마무라 도모(今村?, 기쿠치 겐조(菊池謙讓 등이었는데, 이들은 제국대학에서 아카데미즘 역사학의 훈련을 받은 관학자들은 아니었다. 사쿠라이는 그들로부터 ‘생생한 조선근대사’를 배웠다고 회상한다. 패전 이후에도 사쿠라이는 서물동호회를 지속시키기 위해 제국대학 출신의 역사학자들(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 다가와 고조(田川孝三과 함께 ‘도쿄서물동호회’의 재건을 시도하기도 했다.
사쿠라이 요시유키의 수집
1941년부터 조선총독부 관방문서과로 옮겨 기관지 『조선』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던 사쿠라이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부인과 둘이서 현해탄을 다시 건너갔고, 1989년 9월 12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반도에 한 번도 발을 들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관료나 학자들이 그렇듯이 패전 이후 그의 삶을 지탱해준 것은 식민지에서 만들어둔 인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