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구할 수 없던 아이들
최근 조사된 ‘국민 삶의 질 보고서’를 살펴보면 한국인 삶의 만족도는 평균 10점 만점에 5.9점으로 집계됐다. 이 조사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항목은 ‘아동 학대 피해 경험률’이다. 18세 미만 인구 10만 명당 500건이 넘는다. 2021년, 민법에서 징계권 조항이 삭제됐지만, 성인 열에 여덟은 여전히 체벌이 금지된 사실을 모른다고 한다. 물론 물리적인 학대만이 학대는 아니다. 정서적 학대, 방임도 학대다. 홍당무의 아버지처럼 온 집안이 쓰레기장이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도, 아이가 더 어린아이를 돌보게 하는 일도 학대다. 책 속에서 홍당무가 자신을 두고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지금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정말 그렇다고도 할 수 있겠다. 홍당무에게는 ‘조’라는 작은 빛이 있었고 ‘향기’를 통해 스스로를 구할 수라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하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 죽어 가는 아이가 세상에 너무나 많다. 살아남더라도 아동 학대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하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할 일은 주변에 학대받는 어린이가 있는지 살펴보고 귀 기울이는 것이다. 학대 의심만 들어도, 동 호수를 특정할 수 없어도 신고할 수 있다. 경찰이 출동하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상황을 멈출 수 있다고 한다. 아동 학대는 한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닌 어린이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사회 문제다. 개개인의 관심은 물론이고 관련 제도 개선과 시스템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에서 고통받았더라도, 홍당무처럼 자신을 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상처 입은 어린 나를 그대로 마주할 용기
유년의 기억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사람도 있을까.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낯선 감정을 느끼며 그것들이 마구 뒤섞여 뭐가 뭔지 잘 구별되지 않는 시기가 그저 편안한 기억으로만 남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감싸는 향기』 속 홍당무의 기억도 그렇다. 색색깔 체리로 장식된 세 살 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