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고대 그리스에 테이레시아스라는 사람이 살았다. 소년 시절 그는 숲길을 지나다 교미하는 뱀들을 보고 무심코 지팡이로 때렸다. 그 자리에서 그는 소녀로 변해 그 몸으로 몇 년을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지나다 다시 그 뱀들이 교미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다시 뱀들을 때렸고 다시 남자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결국 테이레시아스는 남자로 돌아가길 택했다는 점이다. 2020년 현재, 트랜스젠더가 존재하느냐 아니냐 정의하기 앞서 이 지점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 육신으로―정신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했다. 누군가는 선택지가 있을 때 그것을 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언제나 경계의 교묘한 사이로 이어진다. 이분법적 사회가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갈라놓는다면, 그 경계에는 문이 있다. 우리는 그 문을 계속 두드린다.
이 희곡은 그 문과 두드림에 관한 이야기이다.
책 속에서
(실제 공간과 순서와는 상관없이 수하물 검사대를 지나는 박진희, 가방을 차례대로 올려놓고 두 팔을 들고 검색대를 지난다. 진희가 검색대 앞에 서는 순간부터 직원들 사이에 묘한 혼란이 맴돈다. 진희가 검색대를 통과하자 직원 2와 직원 3이 서로 눈을 마주친다. 아주 짧고 묘한 시선이 오간다.
진희 (방백 지금 저들은 나를 두고 일대의 고민에 빠져 있다. 국경을 넘는 트랜스젠더들에게 발생하는 흔한 일이다.
직원2 실례합니다. 당신은 여자, 아니면 남자?
진희 암 트랜스젠더. 피메일 투 메일.
직원2 아, 오케이. 그럼 여자와 남자 중 어느 쪽이 바디 체크하는 게 편해요?
진희 딱히 상관은 없어요. 편한 쪽으로.
직원 2와 직원 3이 다시 눈을 마주하고 뭔가 대화한다.
진희 (방백 그들은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혹은 나에게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으로 애쓰고 있다. 여자 검사관이 몸을 만진다. 침착하게, 사무적으로. 결국 나의 성별과 육체는 침착하게 사무적으로나 대하는 것이다. 국경을 넘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