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오늘도 밤 열두 시가 되자마자 싸움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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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갛고 작고 네모난 봉투였다. 별로 안 친한 애한테 보내는 아주 작은 크리스마스카드 봉투 같은. 누가 방금 흘리고 간 듯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텅 빈 골목, 흙먼지 가득한 바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나는 그걸 주워 들었다. 아주 가벼운데도 이상할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안에 뭔가 꾸깃거리는 게 들었는지 봉투 중간이 약간 도톰했다.
--- p.16
“대만에선 빨간 봉투를 주운 사람이 그 안에 든 사주를 가진 사람과 운명의 짝이 되어야 해. 빨간 봉투를 주운 날로부터 49일 안에 무효 선언을 하지 않으면. 그래서 내가 부탁 하나 하려고 왔어.”
아~ 예예, 하며 나는 피식 웃었다.
“운명의 짝? 우리나라에선 만 18세 미만 청소년이 부모 동의 없이 결혼하는 걸 금지하고 있어. 난 법이 보호해 주는 청소년이라고.”
--- p.29
진자룡은 레인 오빠 브로마이드가 붙은 벽 아래에 주저앉더니 머리를 감싸 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꿈을 이룬 레인 오빠의 환한 표정과 대비되어, 진자룡의 괴로운 표정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 p.64
당당하게 윈윈에 들락거릴 나를 상상해 보았다. 물론 비밀 프로젝트니까 대놓고 자랑은 못 하겠지만, 윈윈 건물 안의 공기를 마시면 나는 분명 다른 존재가 될 것이고, 그런 건 티 내지 않아도 다 티가 나는 법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진자룡은 이 운명을 끊는 일에 진심이지만, 나는 레인 오빠를 만나는 것에 더 진심이다.
--- p.93
나는 안다. 진자룡의 탁월한 재능과 스타성을. 나처럼 급하게 만들어 낸 능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차원이 다른 잠재력이 있다는 걸. 진자룡에게 과외를 받는 동안 나는 춤과 노래만 익힌 것이 아니었다. 내 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배웠다. 꿈을 가지고 노력한다는 건, 단순히 살아가는 목표가 있거나 재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존중하는 습관이라는 걸 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