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Ⅰ. 현지에 들어가면서
PART Ⅱ. 유럽계 이민자와 과이레뇨
1. 남미 남부지역의 유럽계 이민자와 비야리카의 유럽계 이민자
2. 유럽계 이민자에서 과이레뇨로: 인종에서 종족으로
3. 과이레뇨에 관한 소문과 이야기
4. 과이레뇨 속으로
PART Ⅲ. 과이레뇨의 기원과 역사
1. 과이레뇨의 거주지역
2. 식민시기 과이레뇨의 역사
3. ‘토착 과이레뇨’의 형성
PART Ⅳ. 삼국동맹전쟁과 유럽계 이민자의 유입
1. 삼국동맹전쟁에 따른 인구감소와 사회 변화
2. 유럽계 이주민의 유입에 따른 인종 변화
3. ‘외국인 도시’로서의 비야리카
PART Ⅴ. 과이레뇨의 타자화: 냉전과 내전으로 인한 정치적 분열
1. 과이레뇨와 자유당
2. 두 번의 내전과 정치적 갈등의 극대화
3. 과이레뇨에 관한 비판적 담론의 형성
PART Ⅵ. 과이레뇨의 종족성: 방어담론으로서 역사만들기
1. 역사 찾기와 공식화
2. 역사 유포와 비판적 담론의 과이레뇨화
3. 역사 공동체로서 ‘과이라 공화국’
PART Ⅶ. 나가는 글
참고문헌
저자는 학부시절 오스카 루이스의 『산체스네 아이들』을 읽고 빈곤과 일상, 라틴아메리카 연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2003년 박사과정 중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지역을 방문하고 돌아온 후에는 해외 연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파라과이에 머물며 현지조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1년간의 ‘달콤한’ 현지조사를 끝내고 박사 학위 논문 역시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연구하고자 마음먹었던 주제가 그의 발을 잡았다. 그 연구는 쭈끄뜨에서 현지조사를 하던 당시 파라과이 사람들의 농담 속에서 힌트를 얻은 것인데, 농담의 ‘주인공’은 바로 파라과이의 소도시인 비야리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 파라과이 사람들은 비야리까 사람들을 ‘과이레뇨’라 부르며, 특수한 지역집단으로 인식하였다. 왜 파라과이 사람은 비야리까 사람들을 그들과 구별되는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일까? 그리고 과이레뇨는 어디에서 기원했을까?
비야리까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아르헨티나의 이탈리아계 이민자와 브라질 남부에서 유입된 독일계 이민자 등 유럽계 이민자들이 대거 정착하였다. 유럽계 이민자들의 영향으로 그곳은 파라과이의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 덕에 농담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비야리까는 미시적으로 유럽계 이민자에 의한 과이레뇨의 종족성을 이해할 수 있는 장소이며, 더불어 거시적으로는 꼬노 수르 지역 혹은 리오 데라 쁠라따 지역에 정착한 유럽계 이민자들의 삶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들 라틴아메리카는 같은 언어와 종교, 유사한 인종 집단이 모여 있어 동일한 문화권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으나 음식과 인종이라는 단편적인 예만 보더라도 라틴아메리카는 단일 문화권이 아닌 다양한 문화권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족성은 타자화에 의해 극대화됨으로써 외부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유럽계 이민자들의 유입으로 인해 비야리까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국가, 주변국의 영향을 받았고, 결과적으로 과이레뇨라는 종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