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베네치아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떠올린, 말하지 못한 것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침묵을 가지고 노는 것이며, 실생활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들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뮤진트리에서 출간하는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의 다섯 번째 작품이다.
‘미술관에서의 하룻밤’ 시리즈는 프랑스 스톡 출판사의 기획 작으로, 작가가 아무도 없는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머물며 떠오르는 사유를 글로 풀어내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두 주인공은 모로코-프랑스의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와 베네치아의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이다.
모로코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활동하는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베니스의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에서 하룻밤을 지내보지 않겠느냐는 편집자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글쓰기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지인들과의 약속뿐만 아니라 아예 전화마저 차단해야 할 처지인데도 그런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 이유는, ‘갇힌다’는 것이 주는 뿌리칠 수 없는 유혹 때문이었다. “나도 나갈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들어올 수 없는 장소에 혼자만 있는 것. 의심의 여지 없이 이것은 소설가의 환상”이기에.
작가는 베네치아에 도착한 후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를 아무 말 없이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거나 글감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이 오래된 도시에서의 산책을 순전히 내적인 체험으로 만들고 싶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온통 환하게 밝히고 사는 세상과는 딴판인, 베네치아의 어두운 골목길들을 걸어 미술관에 당도했다. 앞으로 몇 시간 동안 작가는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진 이 거대한 건물에서 오로지 전시된 작품들만 대면하며 고독한 밤을 보낼 것이다. 그곳에서는 때마침 서른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장소와 기호’라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푼타 델라 도가냐 미술관은 베네치아의 명물이다. 17세기에 건립되어 당대 최고의 도시 베네치아로 들어오는 모든 선박의 물품들에 관세를 징수하는 세관으로 쓰였던 건물을 20세기에 개축했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