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눈, 화가의 손… 그리고 겸재의 그림 선생
겸재를 삼연의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하도록 천거해준 사람은 사천 이병연(1671-1751이었다. 그와 겸재는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시와 그림을 바꿔보며 교유함’ 관계로 불린다. 그러나 ‘볼 간看’은 ‘시간을 두고 변화를 살핌’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글자로, ‘시화환상간’은 ‘두 사람이 시와 그림을 교환하며 서로의 작품세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봄’이란 뜻에 가깝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의 작품이 변화해가는 과정을 살펴보며 교유하였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될까? 두 사람은 왜 서로의 작품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을까? 두 사람이 하나의 주제를 시와 그림으로 표현하며 한목소리를 내는, 이른바 ‘시중유화詩中有畵 화중유시畵中有詩’의 효과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앞서 ‘금강산 만이처봉을 모두 부숴버리고 싶다’는 삼연 김창흡의 생각을 사천 이병연은 겸재의 《신묘년풍악도첩》 속 〈단발령망금강산〉을 통해 바꾸게 하였다. 즉, 삼연이 당시 파악하고 있던 금강산 불교계에 대한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사천이 비유하였고, 이를 삼연이 받아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쌍방의 정치적 생각과 행위를 겸재의 그림을 통해 주고받았던 셈이다.
사천은 제시題詩 「관정원백무중화비로봉 觀鄭元伯無中畵毗盧峯」이란 시에서, 겸재의 호방한 성격과 천재성을 아끼는 마음을 보이는 한편, 그를 ‘낭중무화필囊中無?筆’이라 하였다. ‘낭중무화필’이란 ‘주머니 속에 그림 그리는 붓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그림을 담아낼 화의?意가 없다’는 뜻이다. 왜 그랬을까? 사천은 금강산이 아무리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절경이라 해도 감흥에 취해 풍경을 옮기는 것은 선비의 그림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겸재가 이를 무시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절경을 옮기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사천은 선비의 그림을 보고자 겸재를 금강산 여행길에 동행케 했던 것인데, 겸재가 이런 기대를 저버리고 쟁이의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방자하다는 말까지 한다.
사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