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본질부터 종교의 타락을 거쳐 20세기의 파국까지
시몬 베유의 최종적인 신학적, 정치적 입장이 담긴 생애 말미의 저술들
시몬 베유는 1909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불가지론자에 가까웠고 베유 자신도 청소년기에는 “신이라는 문제를 아예 제기하지 않는 것이 최악을 면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럼에도 나중에 밝히길 그는 항상 “그리스도의 태도를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태도로” 보았고(『신을 기다리며』, 1930년대 후반에는 그리스도인을 자처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부터 신학의 문제와 종교사 연구에 전념한 그는 1943년 사망할 때까지 엄청난 양의 기록을 남겼다. 이 원고들 대부분은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지만 사후에 여러 경로로 출간되었고, 국내에도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부터 『신의 사랑에 관한 무질서한 생각들』, 『중력과 은총』, 『신을 기다리며』, 『뿌리내림』까지 대표적인 후기 저술이 여럿 번역되었다.
이제 그의 신학적 사고를 담은 책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죽기 직전인 1942~1943년에 집필한 종교사 및 유럽 문명 관련 글 여섯 편을 묶은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가 그 주인공이다. 자신만의 신 개념을 정립한 시점에 쓴 이 글들은 신학적 쟁점들에 대한 베유의 최종적인 확신과 물음 대부분을 전개하고 있다. 앞의 네 편은 그리스도교의 전사(前史와 역사를 다룬 1942년의 글로, 특히 그리스도교가 타락한 배경을 뒤쫓는다. 뒤의 두 편은 1943년 런던의 프랑스 망명 정부에 속해 일하는 동안 전후 프랑스 사회의 재건이라는 맥락에서 쓴 글이다. 이 글들에서 그는 모두의 영성적 존엄성에 입각한 사회 질서를 스케치한다.
베유는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했다. 또 2차 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프랑스 망명 정부에 합류하는 한편 서양 세계가 맞이한 위기의 근원을 해명하고자 분투했다. 당시 서양은 의회 민주주의의 공허성, 권력자 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의 타락, 파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