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사랑하고 불안을 살아낸 망국의 청년들이
경성 관훈동의 서양식 카페 ‘카카듀’에 있었다
새 시대를 위한 역사소설
설령 망하더라도 이번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모든 것을 낱낱이 기억하고……. 기억해서 어쩔 것인가는 모르겠으나, 다만 기억하고……. -157쪽
작가는 《체공녀 강주룡》에서 보여주었듯 소수자의 기록 한 줄로 스쳐 지나갈 법한 역사적 사실에서 서사적 진실을 길어 올린다. 전작이 평양의 여성 노동자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경성의 청년 예술가, 보헤미안, 코뮤니스트 들의 이야기다. 카카듀의 동업자 이경손과 현앨리스 모두 실존 인물일뿐더러, 나운규, 김명순, 이음전(이애리수 등 그 시대 문화 예술인과 심훈, 김구, 박헌영 인물이 소설 속에 다채롭게 등장한다. 이경손은 나운규의 우정을 나누는 동시에 그만의 명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현앨리스는 가부장적 사회에 선연히 반기를 들고 자신만의 사상을 채워나간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와 활동, 웃음과 침묵 모두 애처롭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망국의 청년이기 때문이다. 모두 식민지의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박서련은 실제 그 시기를 살았던 예술가 청년들을 호명해 소설의 전당에 세운다. 짧은 역사적 기록에 충실하되 기록의 빈칸을 서사적 상상력으로 채운다. 그리하여 《카카듀》는 역사가 미처 포착하지 못한 진실에 가닿는다. 그것은 거대한 사건, 위대한 인물, 상징적 배경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부산항에서, 경성 영화사 사무실에서, 작디작은 끽다점에서, 상해 조계지 거리에서 역사는 한 걸음, 그도 아닌 반걸음씩 걸어 여기까지 닿았고, 지금의 우리가 그 걸음걸음의 기억을 읽는다. 퇴폐가 만연한 가파른 시국에 그들은 ‘카카듀’에 모였다. 100년이 지난 여기에서 우리는 어디에 모여 무엇을 도모할 것인가? 새로운 시대의 역사소설 《카카듀》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술과 거짓의 전당에서
마침내 앨리스에게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사랑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