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머리에 4
슬픔과 아픔, 그리고 몸부림
그림자 춤 8
저녁노을 속으로 날아간 종이비행기 26
그림자 춤·2
강은 거기 있었다 44
그림자 춤·3
한 번도 못 가본 나라 63
그림자 춤·4
무채색 낙화 81
그림자 춤·5
빈 배 99
그림자 춤·6
작은 흙더미 119
그림자 춤·7
금수회의록 139
그림자 춤·8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다리 158
그림자 춤·9
산, 나무, 새 176
그림자 춤·10
창과 방패 196
그림자 춤·11
착각과 망각 사이 214
그림자 춤·12
해설 233
영혼의 치유를 위해 환생한 우리 시대 구보의 세태 담론_윤정헌(문학평론가·경일대 교수
책 속에서
나는 머릿속이 온통 물 걱정으로 가득 찬 채 아파트 현관을 나와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저녁에 있는 고등학교 동기회에 가기 위해서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여기서 또 물 걱정을 하나 더 보태게 됐다. 이틀 후에 아파트 단지 전체에 물청소를 실시한다는 알림판이 붙어있는 게 아닌가? 물은 얼마나 들까? 매일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들의 수고로 복도며 계단이 모두 깨끗한데 왜 또 물청소를 해야 하는가? 그것도 정원의 나무들이 시들어 비틀어지고 있는 이런 극심한 가뭄 속에서. 아파트 3단지까지 합하면 천오백 세대가 넘는데, 엄청난 물이 소비될 것이다. 차라리 그 물을 정원에 뿌려서 죽어가는 나무나 살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경석이의 유택, 베개만 한 오석 한 덩이가 전부인 그의 무덤은 마른풀 속에서 처량하다. 지난 가을에 이렇게 여기서 내려다보았던 마을 풍경은, 지금은 회색빛으로 엎디어 있다. 무채색, 명도만 있고 채도는 없는 회색은 색깔이면서 색깔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의 색깔이요 침묵의 색깔이다.
실체는 따로 있는데, 자기의 춤사위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흐느적거리는 그림자 춤.
지금 우리가 낙동강에서 유람선 타고 싶다는 건 단순한 놀이 감정만은 아니지 싶어.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된 이 나라 역사에 대한 애틋함이지.
그런데 김 선생님. 오늘 저녁에 나는 그 말이 단순한 허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다리를 놓는다는 생각. 그러면서도 또 어쩌면 그 다리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다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온갖 수난을 참고 견디며 지켜온 이 나라 아닌가? 희망을 가지고 찾으면 해결의 싹은 있을 거야. 틀림없이.”
우리가 이렇게 노닥거리고 있는데, 우리 얘기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우리 곁의 수풀 속에서 산새 한 마리가 포르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우리의 시선이 그 새를 향한다. 그 위로 펼쳐진 하늘이 파랗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