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자본주의가 시작되던 19세기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신자유주의 금융자본주의 시대에 비견될 만한 ‘돈’의 시대였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바로 이와 같은 ‘돈’의 시대를 증언하는 리얼리즘의 선구자였다. 1789년 대혁명으로 왕과 귀족과 교회의 특권을 철폐하고 자유, 평등, 박애의 세상을 만든 프랑스이지만, 19세기는 혁명의 시대와 동시에 인간보다 ‘돈’을 더 중요한 가치로 삼는 부르주아지의 시대이기도 하다. 19세기 초중반의 프랑스 사회의 거대한 벽화를 그리는 『인간극』 시리즈의 일부를 이루는 중편소설 『회계한 멜모스』와 『아듀』는 돈의 시대에 대한 신랄한 발자크의 통찰을 비교적 짧은 분량의 소설 속에서 음미할 기회를 제공한다. 『회계한 멜모스』에서는 『파우스트』에서처럼 악마가 인간의 영혼을 사들이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신화는 발자크에게는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다. 악마에게 돈을 받고 기꺼이 영혼을 팔고자 하는 이들이 넘쳐나는 19세기 파리, 그것도 특별히 증권거래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소설은 자본주의 속에 사는 인간 영혼을 파헤치고 있다. 『아듀』는 재현이라는 미학의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 필리프는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의 패퇴시 ‘베레지나’ 도하작전에서 헤어진 옛 여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도하작전을 재현하는 장면을 물적으로 연출한다. 19세기 대형 스펙터클쇼 파노라마를 연상시키는 이 같은 설정은 현대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를 연상시킨다. 리얼리즘의 아버지 발자크의 중편을 통해 독자는 돈이 지배하는, 스펙터클의 세계가 단지 19세기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