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삭임을 들은 이들이 마치 감염이라도 된 듯 방제복을 입은 이들과 똑같은 짓을 하는 모습은 내게 혐오 발언을 했던 폴란드 할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뱀의 혀처럼 날름거리는 그들의 혀에서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38쪽
‘하얀 방제복’을 입은 존재들은 혐오를 조장하고 퍼뜨리는 데서 이익을 구하는 세력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혐오의 뿌리가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사실과 혐오를 불가지의 어둠 속에 놓아두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후자는 자칫 혐오를 자연화하면서 혐오와의 싸움을 마치 절대악과의 투쟁처럼 추상화하고 관념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은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2015, 『밤이여 오라』(2021의 두 근작 장편에서 작가 이성아가 힘주어 밝히고 있는 폭넓고 강렬한 문학적 진실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의 무관심 속에 일본과 북한 모두에서 버림받고 배제된 북송 재일교포의 이야기를 풀어낸 『가마우지는 왜 바다로 갔을까』는 단단하고 밀도 높은 리얼리즘으로 경계인들이 겪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수난을 정밀하게 복원하는 가운데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이 국가권력의 존재 이유를 되묻게 한다. 인종청소의 참혹한 내전이 벌어졌던 발칸반도의 이야기를 배경 서사로 하면서 조작된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된 인물의 화해를 향한 힘든 여정을 제주 4·3의 아픈 가족사에까지 연결시킨 역작 『밤이여 오라』 역시 문제를 역사의 폭력이나 횡포와 같은 추상적 차원에 놓으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이야기에서 제주와 마르부르크, 자그레브와 서울을 넘나들며 이름 없는 개인들의 삶을 짓밟고 파괴하는 독단적인 국가권력의 폭력들을 계속해서 의식하게 된다. 말하자면 혐오의 피해든, 개인적 삶의 파괴든 이성아 소설은 그 배제와 억압, 죽임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하얀 방제복’으로 표상되는 폭력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좌표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물론 이 좌표의 선명함은 피해/가해 구도의 도식적 이분법과는 거리가 멀다. ‘하얀 방제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