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 8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 14
제2칙 백장야호百丈野狐: 인과에 어둡지 않다 · 38
제3칙 구지수지俱指: 한 손가락을 세우다 · 50
제4칙 호자무수胡子無鬚: 달마에게는 왜 수염이 없는가? · 59
제5칙 향엄상수香嚴上樹: 입에 나무의 가지를 물고 매달리다 · 65
제6칙 세존염화世尊拈花: 꽃을 들어 보이다 · 74
제7칙 조주세발趙州洗鉢: 발우를 씻어라! · 82
제8칙 해중조차奚仲造車: 수레의 굴대를 떼어 내다 · 88
제9칙 대통지승大通智勝: 그가 성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94
제10칙 청세고빈淸稅孤貧: 외롭고 가난합니다 · 103
제11칙 주감암주州勘庵主: 계십니까, 계십니까? · 109
제12칙 암환주인巖喚主人: “주인공!” 하고 부르다 · 117
제13칙 덕산탁발德山托鉢: 발우를 받쳐 들고 가다 · 122
제14칙 남전참묘南泉斬: 고양이를 베다 · 132
제15칙 동산삼돈洞山三頓: 강서로, 호남으로 그와 같이 다녔느냐? · 140
제16칙 종성칠조鐘聲七條: 종소리에 왜 칠조가사를 입는가? · 150
제17칙 국사삼환國師三喚: 시자를 세 번 부르다 · 159
제18칙 동산삼근洞山三斤: 마삼근! · 167
제19칙 평상시도平常是道: 평상심이 도이다 · 172
제20칙 대역량인大力量人: 힘이 센 사람이 왜 다리를 들지 못하는가? · 181
제21칙 운문시궐雲門屎: 똥막대기! · 188
제22칙 가섭찰간迦葉刹竿: 문 앞의 찰간을 넘어뜨려라 · 194
제23칙 불사선악不思善惡: 선도 악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 201
제24칙 이각어언離語言: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향기로웠네 · 212
제25칙 삼좌설법三座說法: 잘 들으시오, 잘 들으시오 · 221
제26칙 이승권렴二僧卷簾: 두 스님이 발을 말아 올리다 · 230
제27칙 불시심불不是心佛: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니고 물物도 아니다 · 235
제28칙 구향용담久響龍潭: 『금강경』 소초疏抄를 불태우다 · 240
무문관과 들뢰즈의 조우
의미를 생성하는 ‘무-의미’에 대하여
일상어에서 차이 그 자체를 추구한 선불교의
역설의 언어, 차이의 언어들
아비달마, 중관, 유식, 인명 등 인도불교를 오래 연구해 온 필자는 자신이 중국불교의 한 줄기인 선불교의 공안집公案集(화두집 『무문관』無門關에 이끌린 이유를 모든 공안집의 공안(화두이 담고 있는, 차이의 언어인 활구活句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도불교든 선, 화엄, 천태 같은 중국불교든 모든 유형의 불교는 붓다의 말씀이 시사하는 차이 그 자체를 전개하는 쪽으로 흘러왔다. 동일성에 기반하는 모든 철학을 타파하기 위해 불교는 테라바다 불교든 대승불교든 인도, 티베트, 몽골, 중국, 한국, 일본 등 북방의 나라들에서,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스리랑카 등 남방의 나라들에서 차이 그 자체를 드러내 보이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런데 이 모든 나라, 이 모든 불교 중에서 언어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유난히 두드러지는 불교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땅 한국에 있는, 우리가 선禪이라는 이름으로 자주 맞이하는 불교이다. 모든 유형의 불교가 차이 그 자체를 지향해 왔지만, 일상어에서 차이 그 자체를 추구하고 발견한 불교는 선불교가 유일하다. 선불교의 언어들은 일상어의 사구와 활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활구는 역설의 언어, 차이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1,700공안의 요체를 담고 있는 『무문관』 48칙 공안
그리고 “무” 자 공안의 위력을 섬세하게 탐구하다!
『무문관을 사색하다』는 남송南宋 시대의 선승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가 지은 『무문관』의 본칙, 평창, 송을 해독하고 해석한 책이다. 『무문관』은 같은 이름으로 된 영화가 나오고, 수행처가 생길 정도로 유명한 공안집이다. 무문관이 세간에 영화, 수행처, 화두집 가운데 어떤 이름으로 알려져 있든 그 주위에는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 공안의 “무”가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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