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독일가문비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에 쓰인다
귀신의 집/ 비상계단/ 모래 상자/ 표정 카드/ 오르간/ 모조/ 흉/ 탄력성/ 도마뱀/ 혼자 하는 실뜨기/ 일치/ 호각/ 오르간/ 고양이 보호자
유리 그리기
유리 그리기/ 잼잼/ 하우스 피규어/ 넝쿨장미/ 화단/ 양손/ 헤드뱅잉/ 목마/ 말하기에 대한 강박/ 가정과 학습/ 침습하는 목소리/ 도움닫기/ 재생/ 이미지 게임/ 글자 가족/ 양분/ 코스튬/ 커터
그럼에도 흰 눈이 그리는 곡선
성호를 그으며/ 헹가래, 헹가래/ 전염/ 젖은 발/ 캄파눌라/ 유수지에서/ 수평의 세계/ 기척/ 복기/ 그림 없는 그림책/ 크로키/ 새벽 탈출/ 잊었던 용기/ 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는 소리/ 테라스/ 참새 변주곡/ 혼자 가는 먼 집/ 마트료시카
해설_시가 기르는 작은 시
김지은(동화작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시집의 제목인 ‘그림 없는 그림책’은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집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 동화집에는 어떤 그림도 없다. 우리가 읽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글자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우리는 그림이 보여주는 것 이상을 상상할 수 있으며, 스스로 더욱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 남지은의 시집 역시 이와 닮아 있다. 시집의 각 부를 숫자로 표기하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소제목만으로 구분하는 형식은 각 부를 한 시집의 구성요소라기보다는 각각의 개성을 지닌 단권의 그림책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지은의 시는 그림 없이도 우리에게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하고 그 세계로 훌쩍 건너가게 하는 안데르센의 동화집처럼, 절제된 언어로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마트료시카」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가벼움의 미학이 담겨 있는 것이다.
식탁엔 꽃병을 두었다 꽃도 말도 정성으로
고르고 묶으면 화사한 자리가 되어서
곁이란 말이 볕이란 말처럼 따뜻한 데라서
홀로는 희미한 것들도 함께이면 선명했다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왜 나만 남았을까
그런 심정은 적게 말하고 작게 접어서
비우고 나면 친구들이 와
새롭게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식탁엔
커피잔을 들면 남는 동그란 자국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_「마트료시카」 부분
남지은의 시에서 가벼움은 시적 화자가 마음을 다해 돌보는 “어린 사람”(「귀신의 집」 과 긴밀히 연결된다. 어린 사람은 “작은 영혼”을 지닌 사람이자 물리적으로도 “무척이나 가벼”(「기척」운 사람이다. 모든 것이 처음인 어린 사람을 화자는 정성껏 돌보며 머리를 “다정히 묶어”(「성호를 그으며」주고 “너는 나를 이런 식으로 닮아선 안 된다”(「잼잼」고 스스로에게 되뇌듯 속삭인다.
또한 가벼움은 시인으로서 남지은이 시를 대하는 태도와도 관련되어 있다. 시인은 양육자가 아이의 얼굴에 묻은 침이나 콧물을 부드럽게 닦아주듯 감정적 서술과 긴 수식어들을 덜어내 말끔하게 다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