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온 역사를 통틀어 결론을 내리지 못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모든 게 멸망한 행성에서 로봇은 사랑 개념을 깨우칠 수 있을까?
내게 사랑은 차가움과 뻣뻣함으로 시작됐습니다. 나는 사랑에서 가장 멀어 보이는 이 두 단어로부터 사랑을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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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사랑 개념을 탐구하는 로봇들에 대한 내용이다. 이미 이 행성에서 인류는 사라졌고, 다른 생물들도 멸종했다. 정작 사랑하라고 명령한 인간과 사랑해야만 하는 로봇 간의 사랑이 절대 성립될 수 없는 전제로 이야기는 시작하는 것이다. ‘경아’는 임무에 따라 다 무너져가는 연구소의 컴퓨터 속 데이터를 뒤져보기도 하고, 남아 있는 책들을 살피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개념을 설명할 때 전부 ‘인간’을 주체로 설정되어 있을 뿐, 로봇을 주체로 설정된 것은 없다.
이내 ‘경아’는 자신에게 자신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입력한 인간 ‘김’의 데이터베이스로 깡통 로봇 ‘김’을 직접 제조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깡통 로봇 김은 깨어나자마자 지나간 과거의 사랑 노래만 불러대고, 정작 사랑에 관해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인간 김과 깡통 로봇 김은 전혀 다른 존재다.
경아는 데이터와 책을 통해 습득한 사랑에 대한 단서를 쫓아, 행성의 다른 장소로 모험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이 행성에는 온통 방사능 폭풍우가 몰아쳐, 경아와 김은 연구실의 방어막으로 겨우 버텨내는 수준이다. 생존하기조차 다급한 이 환경 속에서 경아는 사랑 개념을 온전히 습득할 수 있을까? 습득한다면 대체 어디서 해야 한단 말인가?
이 소설에서는 사실상 단 두 인물, 최신형 로봇 경아와 깡통 로봇 김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낸 듯한-경아는 깡통로봇 김을 창조했고, 깡통로봇 김은 경아를 창조한 인간 김의 데이터로 제조됐다-두 사람 간의 특유 관계가 관건이다. 두 인물은 독자들에게 유머를 선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씁쓸한 감정을 선사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교적 짧은 시간을 다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