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완전히 부서졌고 그래도 살아가야 하기에…
나는 오늘도 파괴된 삶의 조각을 모은다
“아빠가 방금 엄마를 죽였어.” 이 한마디가 소설을 힘겹게 연다. 날 아껴주던 사랑하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가장 참혹한 방식으로. 그러나 비극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범행 직후 도주한 아버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현장을 목격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동생, 자신의 상처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나. 우리는 이 파괴된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까?
‘여성살해(femicide’의 전 과정을 낱낱이 해부하고, 그 참혹한 상처를 들여다보는 필리프 베송의 신작 『아빠가 엄마를 죽였어』가 레모에서 출간되었다. 가정 폭력 희생자들의 마지막을 재구성해낸 분노의 책이자, 오늘도 계속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향한 경고이고, 죄책감과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야 하는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늘진 곳, 약자의 삶을 이야기해온 작가 필리프 베송
가장 일상적인 ‘폭력의 징후들’을 조명하다
고향을 떠나 파리의 오페라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나’는 어느 날 여동생 레아의 전화를 받는다. 레아는 오랜 침묵 끝에 아빠가 방금 엄마를 죽였다고 말한다. 삶은 거기까지였다. 그날 이후 우리의 삶은 무너졌으므로. 사건 현장이라는 이유로 다시 들어갈 수 없게 되어버린 집, 이웃들의 수군거림, 계속되는 경찰 조사, 아버지와의 대질 신문만 괴로운 건 아니었다. 가장 괴로운 건 나 자신이 피해자이자 가해자라는 인식이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을까. 미소를 잃어가는 어머니도, 점점 심해지는 아버지의 집착과 폭력성도,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버린 관계도. 이웃도, 국가도, 친구도… 아무도 몰랐던 걸까. 견디다 못해 신고까지 해봤지만 공권력은 어머니를 외면했고, 마침내 어머니는 아버지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는 칼을 들었다.
분명 우리는 눈이 멀어 있었다. 아니면 겁쟁이이거나.
특히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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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렵게 입단한 발레단을 떠나 고향으로